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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바깥 소식

지구의 날, 반체제운동의 뿌리에서 주류로

지구의 날은 40년 전 미국에서 시작되었다. 1969년 게이로 닐슨 상원의원이 캘리포니아 오일유출사건을 계기로 집회를 연 것이 계기였다. 수 만 명의 젊은이들이 뉴욕 5번가로 모여들었으며 시민들도 쓰레기를 줍고 자전거를 타는 행동으로 합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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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날을 상징하는 깃발


필라델피아의 집회에서의 모습은 더욱 인상적인 것이었다. 브로드웨이의 반체제 뮤지컬을 들으며 일부 운동가들은 방독면을 착용하고 인구포화, 스모그, 오염된 강물에 관한 연설을 들었다. 그것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새로움이었다. 모든 것이 신선했다. 1970년 많은 미국인들은 스스로 환경론자라고 생각했다고 지구의 날 창시자인 데니스 헤이즈는 회상한다.

1960년대에 들어서 환경운동은 반전운동, 인권운동, 여성운동의 경험과 열정에서 시작되었다. 오늘날 환경운동은 많은 환경변호사들, 진보주의자들, 녹색상품의 광고주들로 훨씬 복잡해졌다. 하지만 헤이즈는 1970년과 같은 열정은 퇴색했다'고 단언했다.

미국에서 '생태주의'란 단어는 히피적 관념과 반체제적인 느낌 때문에 곧 사라졌지만, '환경운동'이란 단어는 전문적이고 법률적인 이미지를 가진 덕분에 지금까지도 살아남았다. 40년 전 제1회 지구의 날에는 기업의 참여가 없었지만, 지금은 Wells Fargo, UPS, Procter & Gamble 등이 후원하고 있다. 40년 전 뉴욕시장 존 린제이는 생태니 환경이니 오염이니 하는 말 대신 '살기를 원하는가 죽기를 원하는가?'라는 단순한 질문으로 환경문제의 심각성을 알릴 수 있었다.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40년 전에도 환경운동을 비난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미국애국여성회는 환경운동이 '감정적인 언술과 강렬한 선동을 통해 왜곡되고 과장'되었으며 '체제전복의 마지막 단계'라는 주장을 퍼뜨렸다. 지구의 날이 볼세비키혁명 이론가인 레닌의 생일과 정확하게 100년의 시차를 두고 일치한다는 사실을 들어 공산주의 음모론을 제기했던 단체들도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환경단체들이 주도해왔던 지구의날 행사를 정부가 가로챈 형국이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는 보이지 않고 대통령과 정부 인사들의 발언만 귀에 들린다. 점차 관제 행사로 변모해가는 듯한 지구의 날의 운명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까?(기후변화행동연구소 김미형 객원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