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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 라이프스타일

기후변화 막으려 세계를 누비는 축구스타들

루츠 판넨슈틸은 어린 시절 독일 축구의 기대주 가운데 한 명이었다. 독일 청소년 국가대표팀의 수문장으로 활약하던 그는, 18세가 되던 해에 독일의 대표적인 축구명문 FC 바이에른 뮌헨으로부터 솔깃한 제안을 받는다. 클럽 소속 아마추어 팀과 계약을 맺자는 것이다. 하지만 판넨슈틸은 이 제안을 뿌리치고 말레이시아 한 프로팀의 골문을 지키기 위해 홀연히 비행기에 몸을 싣게 된다.


방랑자에서 ‘글로벌 골키퍼’로


분데스리가에서 성공해 근사한 집과 멋진 자동차를 갖기를 꿈꾸던 판넨슈틸은 방랑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는 유럽에서 아프리카에 이르기까지 20개가 넘는 팀의 골키퍼로 활약하면서 수많은 에피소드를 남겼다. 알바니아에서는 관중들이 던진 돌에 맞기도 했으며, 영국에서는 경기 도중 다른 선수와의 충돌로 의학적인 사망상태를 선고받기도 했다. 국경 없는 ‘세계 골키퍼’로서의 경험은, 결국 판넨슈틸을 세계의 모든 대륙에서 프로선수 생활을 한 유일한 축구선수로 기네스북에까지 오르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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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문장 루츠 판넨슈틸(ⓒ imago)


이렇듯 세계 구석구석을 누비던 그에게 항상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2001년 싱가포르에서 잊지 못할 최악의 경험을 하게 된다. 싱가포르의 한 팀에서 선수생활을 하던 그가 경기결과에 대해 내기를 걸었다는 혐의로 체포된 것이다. 지금은 무고한 누명으로 밝혀졌지만, 그는 반 년 가깝게 억울한 옥살이를 하며 비인간적인 감옥에서 극심한 정신적, 육체적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하지만 이 사건은 판넨슈틸로 하여금 사회문제와 정의에 대해 고민하게 만들었다. 마침내 그는 축구스타로서는 처음으로 기후변화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다.


기후변화 경고 위해 결성한 ‘FC 글로벌 유나이티드’


세계 구석구석을 누비며 축구선수로서 그리고 기후변화의 목격자로 지내던 그는,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축구선수로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글로벌한 스포츠인 축구를 통해 기후변화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면 어떨까? 그는 자신의 머릿속을 스치던 아이디어를 주저 없이 실행에 옮겼다. ‘글로벌 골(Global Goal)’ 이라는 기후보호 프로젝트를 실천하는 세계 유일의 축구팀 ‘FC 글로벌 유나이티드(FC Global United)’는 이렇게 탄생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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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C 글로벌 유나이티드의 주요 선수들. 2009년 1월 독일축구협회 실내선수권대회에서 3위를 차지했다. 독일 전 대표팀의 마르코 레머, 외르그 하인리히, 프레디 보비치, 그리고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국가대표였던 세르게이 바바레즈 등의 모습 등이 보인다(ⓒ www.U-Trixx.com).


판넨슈틸의 아이디어는 곧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불러 일으켰다. 자발적인 참여와 후원을 약속하는 사람들이 줄을 잇고 다른 축구선수들도 적극적인 참여의사를 밝혔다. 마르코 레머, 외르그 하인리히와 같은 독일 국가대표팀 출신 선수들, 아르헨티나의 슈퍼스타 마라도나와 브라질의 베베투, 덴마크의 ‘거미손’ 슈마이헬 등 과거 톱스타들이 FC 글로벌 유나이티드를 지원하고 있다. 축구선수 출신만이 아니다. 가수 로비 윌리암스, 그룹 ‘아하’의 모튼 하켓, 그리고 NBA 농구스타 스티브 내쉬 등 다양한 분야의 스타들이 판넨슈틸의 계획에 동참하고 있다.


북극에서 킬리만자로까지 기후변화를 증언하다


FC 글로벌 유나이티드는 오는 12월 북극의 킹 조지 섬에서 스칸디나비아 출신의 옛 축구스타들로 이루어진 ‘스칸디나비아 올스타’와 친선경기를 갖을 예정이다. 이들의 경기는 DVD로 녹화해 공개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판넨슈틸은 축구경기 자체는 단지 ‘배경’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DVD에는 경기 외에도 선수들이 북극의 자연환경을 소개하면서 북극의 빙하가 녹게 되면 어떤 피해를 입게 되는지 설명하는 모습이 담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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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C 글로벌 유나이티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선수들(이미지 ⓒFourFourTwo, Daum, Skysport)


FC 글로벌 유나이티드는 기후변화의 영향이 나타나고 있는 세계의 다양한 장소에서 친선경기를 계획해 놓고 있다. 친선경기 개최 예정지들은 북극을 비롯해 코펜하겐, 탄자니아, 네팔, 파키스탄, 아마존, 그리고 2010년 월드컵이 열리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이다. 친선경기로 벌어들이는 수익금 전액은 100여개에 달하는 기후보호 시민단체와 민간 연구소들이 함께 결성한 '기후동맹(Climate Alliance)'에 기부할 예정이다.


네버 엔딩 스토리


‘세계의 골키퍼’로서 온 지구를 누빈지 거의 20년이 흐른 지금 판넨슈틸의 나이도 어느덧 마흔에 다가서고 있다. 그가 앞으로 얼마나 많은 나라와 축구팀을 거칠지 그리고 언제까지 현역선수로 골키퍼 생활을 할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날로 심각해져가는 기후변화에 맞서 세계의 기후를 지키는 골키퍼로서 판넨슈틸이 내딛는 걸음은, 올해 출판된 그의 자서전 제목처럼 결코 ‘멈출 수 없는' 여정이 될 것이다(이사야 기후변화행동연구소 객원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