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에 들어와 핵에너지가 기후변화 시대의 새로운 대안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핵에너지 르네상스’라는 이름을 붙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정말 핵에너지의 미래는 밝은 것일까? 이에 대한 독일연방환경부의 보고서 <세계 원자력산업 현황 보고서 2009>의 답은 “아니오”이다. 보고서는 핵에너지가 역사의 뒤안길로 퇴장해 가고 있음을 구체적인 자료를 통해 보여준다.
가동이 중단된 핵발전소 냉각탑을 폭파해 해체하는 장면(미국 오리건) ⓒSteve Dipaola/rtr
독일 연방환경부장관인 지그마 가브리엘은 유력 일간지 프랑크푸르터 룬트샤우(Frankfurter Rundschau)와의 인터뷰에서 “핵에너지 옹호자들이 주장해왔던 핵에너지 르네상스는 일어나지 않았다’고 단언했다. 전 세계적으로 에너지소비에서 핵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그다지 크지 않으며, 최근 지속적으로 그 비중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전 세계적으로 보면 새로 가동되는 신규 핵발전소의 수보다 가동을 중지하는 핵발전소 숫자가 더 많다. 2009년 8월 1일 현재 세계적으로 435기의 원자로가 운영되고 있는데, 이는 2002년에 비해 9기가 줄어든 것이다. 핵에너지가 전 세계 일차에너지 소비와 최종에너지 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5.5%와 2%. 이나마도 최근 몇 년 간 계속 낮아지는 추세에 있다. 보고서는 핵발전소의 수가 다음 수 십 년간 계속해서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1954년-2009년 8월 1일 까지 세계 원자로의 가동 및 운영중단 통계(출처: Der Welt-Statusreport Atomindustrie 2009)
보고서는 무엇보다도 다음의 세 가지 이유 때문에 ‘원자력의 르네상스’는 좌절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첫 번째는 핵에너지 분야의 전문인력 부족이다. 현재 핵발전소를 운영하는 거의 모든 국가들은 전문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핵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프랑스의 경우에도 1200-1500명의 엔지니어들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정작 관련분야 졸업생은 연간 300여 명에 불과한 실정이다. 미국의 현실 역시 프랑스와 별반 차이가 없다.
두 번째는 원자로 부품의 공급부족 문제다. 단일기업으로는 세계에서 일본제철소(Japan Steel Works)만이 유럽형가압경수로(EPR: European Pressurized Water Reactor) 용기의 부품들을 생산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핵에너지가 르네상스를 만끽할 것이라는 주장은 현실을 도외시한 것이다.
세 번째는 경제성 문제다. 핵발전소 건설에는 점점 더 많은 비용이 투입되고 있다. 핀란드의 올킬루오토(Olkiluoto)에서 AREVA NP가 건설 중인 유럽형가압경수로의 경우에는 이미 예상비용을 55%나 초과한 상태다. 미국 MIT공대는 kWh당 핵발전소 건설 비용이 2,000달러에서 4,000달러로 상승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문제는 이러한 비용증가가 한 나라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적인 경향이라는 점이다.
핵발전소의 건설을 고려하고 있거나 관심을 가진 국가들을 고려한다 하더라도 이러한 하향세는 되돌리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이들 국가들이 가까운 시일 내에 민간부문 핵발전소 건설계획에 요구되는 기술적, 정치적 기반을 확보하기 어렵고 기존 전력망 역시 부족하기 때문이다.
저물어가는 핵에너지 시대 ⓒ Tony Kurdzuk/The Star-Ledger
핵발전소가 생산하는 전력을 현재의 수준으로 유지한다 해도 2015년까지 현재 건설 중에 있는 원자로 외에 47기의 신규 원자로가 건설되어야만 한다. 향후 십년간 가동이 중단될 핵발전소의 전력생산량을 메우기 위해서만 191개의 신규 핵발전소가 필요하다. 최근의 현실로 볼 때 이것은 불가능한 일임에 틀림없다.
보고서의 내용을 종합하면 핵에너지의 미래는 어둡기만 하다. 핵산업의 입장에서 보면 핵에너지 르네상스는커녕 저물어가는 핵에너지 시대를 걱정해야 하는 때가 온 것이다. 독일 연방환경부장관 지그마 가브리엘은 “핵에너지에는 미래가 없다. 미래는 재생가능에너지와 에너지효율향상기술의 것이다”라고 말했다(기후변화행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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