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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눈에 비친 연구소

[헬로! GREEN]온실가스 감축…재계 ‘녹색고민’(동아일보, 2009.9.10)

■ 정부 2020년 감축 3개 시나리오 발표 뒤 술렁

‘탄소 다이어트’ 압박에 “무리하게 감량하면…”

《포스코는 1999년부터 지난해까지 모두 1조3400억 원을 에너지 회수 설비에 투자했다. 에너지 회수 설비는 낭비되는 에너지를 다시 끌어들여 사용하는 시설이다. 포스코의 공정별 에너지 회수 설비 도입률은 99%로 미국 철강산업 평균(42%)이나 일본 철강산업 평균(95%)에 비해 높다. 이 회사는 또 ‘부산물 자원화’ ‘폐열 난방’ 등으로 에너지 효율을 높여 지난해 2003년 에너지 사용량의 11%에 해당하는 에너지를 줄였다. 포스코 관계자는 “이미 에너지 효율이 높은 만큼 녹색성장위원회가 앞으로 온실가스 감축과 관련해 어떤 시나리오를 도입하더라도 회사로서는 많은 양의 에너지를 줄이기가 부담스러울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 설정을 앞두고 산업계의 고민이 커지고 있다. 산업계는 원가 상승 등을 들어 정부가 온실가스 감축에 지나친 속도를 내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고 있다. 반면 환경단체들은 “정부가 제시한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 시나리오로는 ‘녹색 강국’에 들어갈 수 없다”며 감축 목표치를 높일 것을 요구하고 있다.》




○ “몸상태 봐가며 빼자” vs “뺄 때 확 빼자”

재계 “과도한 요구땐 해외이전… 제조업
NGO “개도국 수준의 정부안으론 녹색강국 못돼”


대통령 직속 녹색성장위원회는 지난달 ‘2020년 중기 온실가스 감축목표’로 배출전망치(BAU·Business As Usual) 대비 △21% 감축안 △27% 감축안 △30% 감축안 등 3가지 시나리오를 발표했다. BAU는 현재 기술 수준과 정책을 유지한다고 가정했을 때 미래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뜻한다. 사회적 합의를 통해 이 가운데 하나를 감축 목표로 정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계획이다.

산업계는 온실가스 감축이 지구온난화 방지를 위해 ‘피할 수 없는 문제’인 것을 인정하면서도 감축 목표 설정에 대해서는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온실가스를 감축하려면 새로운 설비 도입 등으로 원가 상승이 불가피한 데다 이미 에너지 효율이 높은 기업들은 더 감축할 여지가 적기 때문이다.

박태진 대한상공회의소 지속가능경영원장은 “최근 매출액 기준 1000대 기업 및 에너지 다()소비 기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수용하기 어려운 수준이면 제조설비의 해외 이전을 고려하겠다는 기업이 15%나 됐다”고 밝혔다. 박 원장은 “무리한 목표 설정이 자칫 제조업 공동화()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508개 기업이 답변한 이 설문조사에서 기업들의 37%는 12월 개최되는 ‘제15차 기후변화 당사국 총회’ 결과를 확인한 뒤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발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답했다. 국제사회의 ‘동향’을 파악한 뒤 목표치를 정해도 늦지 않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환경 및 시민단체 등의 반론도 만만치 않다. 환경단체인 기후변화행동연구소의 안병욱 소장은 9일 대한상의 등 경제 5단체가 주최한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 산업계 대토론회’에서 “한국이 ‘녹색 강국’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2005년 대비 20% 정도의 감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산업계가 요구하는 BAU 대비 21% 감축은 2005년 대비 8% 증가를 목표로 하는 것이어서 양측의 시각차는 28%포인트나 된다.

안 소장은 “기업 입장에서는 당장 감축 비용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지만 지구온난화가 진행될수록 기업이 지불해야 할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라며 정부가 이른 시일에, 더 높은 감축 목표를 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환경단체들은 또 △한국이 경제규모 세계 15위 수준인 점 △온실가스 배출량 세계 10위인 점 △온실가스 증가 속도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가운데 가장 빠르다는 점 등을 들어 높은 수준의 온실가스 감축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 재계 “채찍만 말고 당근도…”

유럽선 에너지 집약산업에 배출권 무상할당
규제보다 인센티브로 자발적 참여 유도를


산업계는 정부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설정할 때 해외 기업들과 경쟁하는 현실을 고려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에너지 집약산업인 철강, 화학, 제지 업계를 중심으로 어느 정도의 ‘보호’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철강업계의 한 관계자는 “유럽에서는 철강, 시멘트 등 국제경쟁을 해야 하는 에너지 집약산업에 대해 2020년까지는 온실가스 배출권을 무상으로 할당하기로 하는 등 실질적인 산업 보호 정책을 펼치고 있다”며 “해외 기업과 경쟁하려면 한국도 비슷한 수준의 산업 보호 장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제지업계 관계자도 “제지산업은 에너지 사용을 줄이는 것이 곧 원가절감과 연결되기 때문에 이미 기업들이 알아서 한계상황까지 에너지 사용을 줄였다”며 “온실가스 배출을 더 줄이려면 설비 교체 등에 엄청난 비용이 들기 때문에 정부의 배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화학업계에서도 “정부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결정할 때 산업별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해 황인학 전국경제인연합회 산업본부장은 “온실가스 감축 방식에 획일적인 규제를 도입하기보다는 인센티브 제도를 통해 산업 부문별로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방식이 효과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주성원 기자
s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