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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펜하겐에서 칸쿤까지

‘역사상 가장 난해한 대화’ 시작돼

제15회 유엔기후변화당사국총회(COP15)가 ‘역사상 가장 난해한 대화’로 묘사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1만 7천명에 달하는 세계 각국의 정치가, 시민운동가, 기자 등이 내고자 하는 목소리가 다르기 때문이다.

정치지도자들, 누가 참석하나?

코펜하겐 회의는 무엇보다도 세계 정상들이 모여드는 ‘세기의 회담’이 될 전망이다.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과 메르켈 독일 총리는 기후변화 당사국총회의 마지막 이틀인 17~18일에 코펜하겐을 방문한다. 영국의 브라운 총리나 우리나라 이명박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노벨상 시상식 참석차 핀란드 오슬로로 향하는 길에 코펜하겐에 들를 예정이었다. 하지만 갑자기 일정을 뒤로 미뤄 18일 각국 정상들이 모이는 협상의 하이라이트에 함께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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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불참 의사를 밝힌 지도자들도 있다. 캐나다와 뉴질랜드의 총리는 얼마 전 참석하겠다는 의사를 번복했고 볼리비아의 대통령과 러시아 대통령의 참석 역시 불투명한 상태다. 앨 고어 미 전 부통령은 예기치 않게 참석 취소를 통보함으로서 그의 강연을 기다려왔던 3천여 청중들을 실망시켰다.

2009년 12월, 코펜하겐 풍경

지난 12개월 간 덴마크 국민들은 샤워 시간을 줄이고 전구를 형광등으로 갈아끼우는 등 온실가스 줄이기에 앞장서왔다. 자전거를 타거나 베이컨을 적게 먹자는 캠페인에도 많은 시민들이 참여했다. 친환경 도시로 알려진 코펜하겐은 더욱 짙은 녹색으로 변신하고 있는 중이다. 유명 놀이동산은 조명을 모두 고효율 전구로 갈아 끼웠고, 시내버스들은 바이오 연료로 운행하고 있다. 7천여 개의 전구로 장식된 시청 광장의 크리스마스 트리는 시민들이 15대의 자전거를 직접 돌려 생산된 전기로만 불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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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 때문에 배출되는 탄소는 어떻게 하나?

기후변화 총회가 열리는 벨 센터(Belle Centre)는 얼마 전 수백만 파운드를 들여 새롭게 단장했다. 총회의 정식 세션 및 각종 부속회의에 참석하는 각국 대표단들이 오가며 발생하는 CO2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서다. UN은 이번 총회를 통해 배출되는 CO2의 양이 40,500톤에 이를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지구온난화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태평양 중서부 국가 키리바시(Kiribati)의 한 해 CO2배출량과 맞먹는 수준이다. 따라서 총회 조직위원회는 이번 회의의 탄소발자국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고심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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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 총회가 열리는 벨라 센터 ⓒ AP


주최 측은 회의 참석자들에게 생수 대신 수돗물, 일회용 종이컵 대신 생물분해성 컵을 나눠주고 대중교통수단을 무료로 운행하는가 하면 유기농 음식을 제공할 계획이라고 한다. 덴마크 외무부는 탄소배출을 상쇄하기 위해 80만 파운드를 들여 방글라데시에 20개의 고효율 벽돌가마를 설치하기로 했다. 회의 참석자들에게 의례적으로 나누어주었던 기념품 세트는 물품 준비목록에서 사라졌다. 받자마자 쓰레기통으로 내던져지는 공짜 기념품을 제작하는 건 낭비라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다.

시위와 캠페인에 나서는 시민들

총회가 열리는 동안 환경운동가들과 반세계화운동가들은 다양한 캠페인과 시위를 선보일 예정이다. 지난 4월 런던에서 G20회의가 열렸을 때 시위를 주도했던 기후행동캠프(The Camp for Climate Action)는 장관급 회의가 열릴 예정인 16일 수천 명이 회의장에 진입해 세계 시민들의 요구를 알릴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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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ardian


13일 오후 2시 교회들은 덴마크 전역에서 종을 350번 울린다. 지구 기온을 안전한 상태로 유지하려면 대기 중 CO2 농도를 350ppm 이하로 줄여야 한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다. 전문 스턴트맨 5명도 뉴욕의 유엔 빌딩 앞에서 퍼포먼스를 벌일 예정이다. 덴마크 정부는 경찰업무를 방해하는 사람들을 12시간 구류에서 40일간 감금까지 할 수 있는 강력한 법을 통과시켰다.

대중스타들도 힘 보탠다

정치인들이 2020년까지의 감축목표를 정하기 위해 골머리를 앓는 동안, 대중스타들은 코펜하겐으로 날아와 협상문에 서명하라고 정치지도자들을 압박할 예정이다. 평소 기후변화에 지대한 관심을 표명해왔던 할리우드 스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물론, 영국의 패션 디자이너 비비안 웨스트우드와 영화배우 다릴 한나가 참석을 예고했다. 슈퍼모델이자 사진작가인 헬레나 크리스텐슨은 사진전을 통해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고발하며,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투투 대주교는 지구온난화로 피해를 입은 세계 다양한 지역 주민들의 목소리를 증언할 계획이다. <노 로고(No Logo)>와 <쇼크 독트린>의 저자이자 대표적인 반세계화운동가인 나오미 클라인도 코펜하겐에 모습을 드러낸다.

협약 체결, 이번에 성공할까?

수백 개의 크고 작은 회의가 열리는 2주일 중 마지막 이틀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결정이 내려지는 시간이다. 17일에는 각국 정상이 전 세계적인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한 마지막 협상에 나선다. 여기에서도 진전이 없을 경우, 덴마크 여왕이 주최하는 만찬에서 의견접근이 갑작스럽게 이루어질 수도 있다. 협약 체결에 성공한다면 18일 점심에 이루어지는 총회폐막 자리에서 그 내용이 발표될 것이다.

이번 총회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측면에서 괄목할만한 진전이 이루어져야 한다. 첫째, 선진국들은 2020년까지 1990년 대비 25~40%의 온실가스 감축을 법적으로 강제한다는 조건에 동의하고 서명해야 한다. 둘째, G77과 중국은 자국의 경제성장을 “평소대로 계속 추진하겠다””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 셋째, 기후변화의 책임이 큰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의 기후변화 피해를 줄이기 위해 재정지원과 기술이전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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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P


코펜하겐, 그리고 코펜하겐 이후

코펜하겐 총회의 결과가 무엇이든,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협상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이번에 법적인 구속력을 가진 협약 체결에 실패하더라도, 이번의 실패는 다음번에는 반드시 성사시켜야 한다는 긴장감과 압력을 불어넣을 것이기 때문이다. 제16회 기후변화당사국 총회는 내년 12월 멕시코에서 열린다. 하지만 촉박한 시간으로 볼 때 늦어도 내년 상반기 안에는 협상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견해다(기후변화행동연구소 이윤주 인턴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