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성 농약물질, 토양오염, 폐수... 세계 굴지의 의류 브랜드 기업들이 직면하고 있는 도전들이다. 녹색경영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21세기 세계 시장에서 이들 기업들은 새로운 변화의 바람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까?
지난 9월 중순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의류박람회(Texworld Trade Fair)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의 실마리를 보여주는 계기였다. Nike, Marks and Spencers, H&M 등 세계 일류 브랜드들이 의류의 환경성과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해 패러다임 전환을 모색하고 있음이 확인된 것이다. 이는 불과 3년 전 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다. 이들 브랜드들은 유기농 목화의 이용이나 폴리에스테르 재사용 등 직물 원료의 건전성 확보와 아시아 국가에서 관행처럼 이루어져 왔던 노동력 착취의 근절 등을 약속하고 있다.
가장 좋은 예는 유기농 목화의 사용이다. 아직까지 고가이기 때문에 서민들에게는 그림의 떡으로만 느껴지는 유기농 면 티셔츠가 대형마트의 진열대에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Tesco, Topshop 등과 같은 유명 대형마트들의 유기농 의류 및 수제품 판매량은 2001년 이래 연간 40%에 달하는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민간단체 Organic Exchange의 분석에 따르면, 이 같은 성장은 나이키, 월마트, 리바이스, 아디다스 등 스포츠 의류 브랜드들이 주도하고 있다.
전 세계 유기농 면제품 시장은 아직 걸음마 단계에 있다. 유기농 면화 생산량은 여전히 전체 면화 생산의 1%에 불과하다. 하지만 유기농 면제품 시장은 성장세는 가히 폭발적이라고 할 만하며, 불경기에도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인도, 터키, 파키스탄 등 19개 나라에서 생산된 유기농 면제품 시장은 2007/08~2008/09 시즌의 경우 20%나 성장했으며, 2011년에는 성장률이 20~40%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경기 침체기에 전 세계 의류시장은 7%가량 위축되었지만, 유기농 의류시장은 약 35%의 신장세를 보이기도 했다.
이처럼 유기농 면제품의 확산은 분명히 고무적인 일이다. 하지만 시장 확대만으로 의류산업계의 윤리적인 과제는 줄어든 것일까? 혹시 일시적인 겉치레 ‘녹색화’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이러한 의문에 대해 답을 내리기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유기농 면제품이라는 사실이 모든 문제를 면책해주지는 않는다. 소비자들은 유기농 면제품이라 하더라도 원료 생산지는 어디인지, 생산자들에게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지불했는지를 잘 따져볼 필요가 있다.
지난 주 프랑스 일간지 리베라시옹은 마치 감옥과도 같은 인도 서남부의 의류 공장을 취재해 보도했다. 이 공장의 소유주는 GAP이나 H&M과 같은 서구 일류 브랜드의 납품업체이다. 그곳에서는 유기농 면 티셔츠가 2.9유로(약 5천원)에 팔리고 있었다고 한다. 이는 끔찍한 노동조건에서 생산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가격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이번 의류박람회에서 대형 의류업체들이 생태적, 윤리적 생산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을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이번 박람회에 참가한 유기농 및 공정무역 업체의 수는 지난해에 비해 두 배나 늘어났다.
기업 스스로 변화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마을 전체가 유기농으로 전환하면서 팔리지 않은 목화를 해결해야 난제도 남아있다. 대기업들은 늘 조심스럽게 움직이지만, 시장에서 먹혀든다는 판단이 서면 매우 과감하게 행동한다. 작은 기업들은 대기업에 비해 윤리적인 경영방식을 도입하기가 쉬운 편이다. 반면 대기업들은 종종 변화의 방향타 구실을 한다. 변화는 이미 전 세계적인 수준에서 시작되었다. 의류산업이 ‘녹색혁명’의 대표주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기후변화행동연구소 이승민 객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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