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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과 이슈

석유기업 로비에 가로막힌 기후변화법

미국에서 기후변화법이 미 하원을 통과한 것은 작년 6월이다. 민주당에서 44표의 반대표가 나오면서 찬성 219표 대 반대 212표로 과반수를 겨우 넘겼지만 이 법의 하원 통과는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한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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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기후변화법 통과에 새로운 장애물이 나타났다. 9월 상원에서 최종투표가 예정되어 있었지만 과반수 확보에 실패해 법안이 상정조차 되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올해 11월에 치러질 미국 상원의원 선거의 결과에 따라 법안 통과 여부는 다시금 시험대에 서게 된다. 하지만 현재 민주당의 패배가 점쳐지고 있어 법안의 상원 통과는 가능성이 매우 희박한 편이다.

공화당에 비해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민주당이 상원과 하원에서 다수의석을 차지하고 있고 미 국민 대다수가 기후변화 법안을 지지하고 있음에도 이 법이 여전히 상원에서 발목이 잡혀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는 작년 8월 소개되었던 기사 ‘기후변화법 통과를 막아라 - 미 다국적 석유기업들의 반격’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최근에는 석유기업들의 조직적인 방해 행위를 간접적으로 입증하는 분석결과가 소개되기도 했다.

지난 9월 27일 ‘미국 진보 센터(Center for American Progress)’는 지금까지 화석에너지 기업(석유, 천연가스, 석탄, 전기회사)들이 벌인 로비 내역을 분석한 을 실었다. 분석 결과에 따르면, 2009년 1월부터 2010년 6월까지 화석에너지 기업들이 법안통과를 막기 위해 의회 로비활동으로 쓴 자금은 총 5억 4,000만 달러, 원화로 환산하면 6천억 원이 넘는다. 이는 같은 기간 미국 상하원의 모든 의원들에게 매일 1,800달러씩 지불한 것과 맞먹는 규모이다. 같은 기간 청정에너지 기업들이 법안 통과를 위해 쓴 로비자금은 약 4,000만 달러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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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상원의원들의 태도는 자신들의 연고지 상황에 따라 극명하게 갈린다. 동부와 서부 해안지역 출신 의원들은 법안에 찬성하고 있는 반면, 석탄 관련 산업과 중화학공업이 발달한 중부 출신 의원들은 법안에 반대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 현실도 녹녹치 않은 마당에 굳이 미국의 정치상황까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을까 의문을 갖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미국은 중국에 이어 온실가스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국가다. 누적 배출량으로는 세계 1위로서 2위와 큰 격차를 보인다. 따라서 미국이 기후변화 협상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면, 전 세계적인 온실가스 감축노력은 수포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미국에서 온실가스 배출량이 줄지 않으면 중국과 인도를 포함한 전 세계 모든 국가에서 지금 당장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다고 해도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를 450 ppm 이하로 제한하려는 국제사회의 목표는 결코 달성될 수 없다.

미국의 기후변화 법안 발의에는 청정에너지 분야에서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 경제위기에서 벗어나자는 의도도 포함되어 있었다. 많은 미국 국민들이 이 법안에 찬성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법안의 성격 때문이다. 하지만 새로운 ‘아메리카 드림’을 꿈꾸는 미 국민들의 기대는 화석에너지 기업들이 뿌리는 엄청난 규모의 로비자금에 가로막혀 실현되지 못할 위기에 처해 있다.

미국은 유독 기업가정신을 강조하는 나라다. 정치도 비교적 선진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돈의 힘으로 정치인들을 수족처럼 부리는 다국적 석유기업들이 존재하는 한, 과연 미국을 기업가정신과 선진적인 정치시스템을 가진 국가로 볼 수 있을까? 미국은 석유시대의 미몽에서 하루빨리 깨어나지 않으면 지금까지 누려왔던 초강대국의 지위를 머지않아 내주게 될 것이라는 점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기후변화행동연구소 류종성 해외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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