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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눈에 비친 연구소

[기고] 온실가스 관리 환경부에 맡겨야 한다 (경향신문, 2010.03.08)


지식경제부와 환경부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다. 산업계 온실가스 관리업무를 둘러싼 갈등이다. 우리나라에서 부처 간 영역 다툼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번 논란은 단순한 부처이기주의로 치부할 사안이 아니다. 온실가스를 왜 감축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 질문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온실가스 감축이 경제 문제라고 단언한다. 주로 기업인이나 경제 관료들의 입에서 나오는 주장이다. 온실가스 감축이 경제와 직결되어 있다는 것이 틀린 말은 아니다. 감축 수준이나 속도에 따라 산업구조의 구조조정을 동반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은 요소투입 의존형 성장 모델에 기초한 과거의 양적 성장전략이 한계에 부딪혔음을 인식한 지 오래다. 따라서 저탄소 경제로의 전환을 제2의 산업혁명이나 제6의 물결로 지칭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온실가스 감축은 경제 문제인가? 아니다. 현대 스포츠가 상업화에 물들어 있다 해서 그 누구도 스포츠를 경제 문제로 환원시키지 않는다. 어떤 경우에도 스포츠의 본질은 신체운동 경기라는 데 있다. 스포츠의 상업화는 자본주의 경제에서 파생된 문제일 뿐이다. 온실가스 감축도 마찬가지다. 온실가스를 줄여야 하는 이유는 탄소시장에서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다. 온실가스 감축의 본질은 그것이 기후변화에 맞서는 외길이라는 점에 있다. 온실가스 증가가 지구 온도를 높여 인류를 파멸로 이끌 수 있다는 전제가 없다면, 탄소 경제라는 말은 아예 성립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세계 대부분 국가는 온실가스 관리업무를 환경부서에 맡기고 있다. 지난해 미국 환경보호청은 “온실가스가 건강과 복지를 위협하며 기후변화의 원인이 된다”며 강도 높은 규제를 예고했다. 온실가스도 오염물질이며, 환경보호청에 이를 규제해야 하는 ‘긴급한’ 의무가 있다는 2007년 4월 연방대법원 판결에 따른 조치다. EU도 지난해 6월부터 자동차가 배출하는 이산화탄소를 위해물질로 정해 규제하고 있다. 모두 산업계의 반발에 굴복하지 않고 온실가스 감축의 본질이 국민건강과 생태계 보호에 있다는 사실을 외면하지 않은 결과다.

일부 산업계는 경제 단체들을 앞세워 에너지 담당부서인 지경부가 온실가스 관리를 맡아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하지만 속내는 온실가스 감축에 미온적인 경제부처가 맡아야 부담을 덜 수 있다는 셈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지경부는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정하는 과정에서도 일부 기업의 입장만을 대변해 왔다. 정부는 지경부의 반발 탓에 산업계의 온실가스 감축량은 줄이고 국민의 감축 부담만 가뜩 높여놓은 상태다. 하지만 산업계 봐주기라는 인상을 주면서 국민에게 온실가스를 줄이라는 말이 설득력이 있을까?

산업 진흥이 존립 근거인 지경부가 기업을 돕는 것을 탓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온실가스 관리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정확성, 추적가능성, 투명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정직한 기업만 피해를 보게 될 가능성이 있다.

산업계 온실가스는 환경규제를 담당하는 부서가 엄정하게 관리하도록 하는 것이 순리다. 이 정부 들어 존재감이 사라진 환경부가 미더워서가 아니다. 근시안적 경제논리에 휘둘리다간 녹색강국은커녕 녹색후진국으로 전락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다.


원문 링크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003081812015&code=9903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