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투뉴스 김선애 기자] 정부가 2020년 기준 온실가스 감축목표 비율을 개도국 최고 수준인 4%(전망치 대비 30%)로 설정한 데에는 이명박 대통령의 의지가 가장 크게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식경제부와 기획재정부 등 경제부처들은 기업들의 반발과 제조업을 중심으로 한 산업 경쟁력의 저하, 경제성장에 미칠 부정적 영향 등을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으나, 이 대통령은 "더 큰 국가이익을 고려하면 목표를 다소 이상적으로 잡아야 한다"며 4% 감축안에 힘을 실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 대통령은 온실가스 감축이 단기적으로는 부담이 되겠지만 ▶녹색산업이란 신개척 시장을 선점하려면 선제적 투자가 필요하고 ▶석유 의존도를 줄여 에너지 안보를 강화해야 하며 ▶녹색산업을 신성장동력으로 삼을 수 있다는 점 등을 들며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정부는 2020년까지 2005년 대비 ▶8% 증가 ▶배출량 동결 ▶4% 감축 세 가지 안을 놓고 검토했으며, 이달 초 녹색성장위원회 6차 보고대회에서 8% 증가안을 제외했다. 4% 감축안은 국제사회가 온실가스 감축 의무가 없는 개발도상국들에 요구하는 최대 감축 수준이다.
한국은 2005년 교토의정서 발효 당시 비부속국가로 분류돼 2012년까지는 온실가스 감축 의무국이 아니다. 때문에 포스트 교토 체제를 논의할 2013년까지는 감축 목표치를 설정할 의무는 없다.
이 대통령은 "국무위원들의 협의를 거쳐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통과된 것도 글로벌한 인식 하에서 논의가 됐다는 점으로 평가한다"며 "정부와 기업, 그리고 민간 NGO할 것 없이 환경에 대한 높은 인식을 갖고 이 같은 결과를 도출해준 데 대해 고맙게 생각한다"고 17일 국무회의에서 밝혔다.
내달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리는 기후변화 정상회의에서 온실가스 감축목표에 대한 합의가 나오기 힘들 것이란 전망이 속에서도 우리 정부가 미리 중기 감축목표를 발표한 것은 이 대통령이 국제회의에서 수차례 했던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점도 작용했다.
지난 7월 이탈리아 라퀼라에서 열린 선진 주요 8개국(G8) 확대정상회의에 참석한 이 대통령은 "한국은 2020년까지의 온실가스 감축목표 발표를 위해 국내적으로 컨센서스 도출 과정에 있다. 금년 중에 이를 발표할 계획"이라고 말한 바 있다.
◆ 산업계 부담 커… 업종 감안한 세부방안 촉구= 온실가스 감축 목표치가 4% 줄이는 안으로 최종 확정되자 산업계는 다소 큰 부담을 느낀 듯하다.
정부 관계자들과 기후변화 전문가들은 온실가스 감축 논의가 시작될 때부터 산업계가 타격을 입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었다. 그렇다고 산업계의 입장을 너무 많이 반영하다보면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낮아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부 또한 건물, 교통 등 비산업 분야가 먼저 온실가스 감축량을 확보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산업계의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의도다.
산업계와 정부의 타협으로 업종별 특성을 감안한 세부 방안을 마련하자는 안이 나왔다. 에너지 다소비기업인 포스코는 업종별 차등을 둬야 한다는 입장을 거듭 표명했다.
포스코 관계자는 "발전과 제철 같은 에너지 다소비 업종에 대해서는 산업별 특수성을 감안해 합리적인 세부방안이 나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병옥 기후변화행동연구소장도 “온실가스 감축에 있어 철강, 석유화학, 시멘트 업계가 제일 어렵다. 특히 철강업계가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며 산업별 차등 감축 방안을 제안했다.
◆ 발 빠르게 대응하는 기업들= 산업계는 온실가스 감축에 대한 부담이 크다고 볼멘소리를 하면서도 발 빠르게 대응책을 마련한 기업들도 있다.
정유·화학업계는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너무 높으면 원가 부담으로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 약화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석유화학업체들은 원유, 나프타 등 기초석유화학 원료의 대외 의존도가 높다"며 "에너지 절감이나 공정 효율성 등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이라 추가로 온실가스를 감축하기는 매우 어려운 상태"라고 말했다.
반면 SK에너지는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청정개발체계(CDM) 사업 발굴을 통한 탄소배출권 확보, 신재생에너지와 폐기물 에너지화 사업 등을 추진 중이다.
LG화학은 기후변화 태스크포스팀(TFT) 구성, 전사적인 에너지 경영 등을 통해 온실가스 감축에 대응하고 있다.
자동차 업계는 자동차 배기가스 규제에 영향을 받고 있어 연료 효율이 높은 차량을 개발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지만, 배기가스량을 글로벌 기준에 맞춰야 하는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에 현대기아차그룹은 2013년까지 5000억원을 투자해 생산시설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감축하겠다는 방침이다.
전자업계의 경우 철강이나 자동차 등 다른 업종에 비해 상대적으로 온실가스 감축에 대한 부담은 적다. 삼성전자나 LG전자는 오히려 정부의 목표치보다 더 강력한 목표를 설정했다.
삼성전자는 지난 7월 녹색경영 선포식에서 2013년까지 2008년 대비 온실가스 배출량을 절반으로 줄이고, 녹색경영을 추진하기 위한 연구개발과 사업장 구축에 5년간 5조400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또 LG전자는 올 상반기에 제품생산과 사용단계에서 210만t의 온실가스를 감축했으며, 2020년까지 제품사용 단계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를 연간 3000만t씩 줄인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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