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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눈에 비친 연구소

[커버스토리]온실가스 30% 감축 “우리 삶이 달라진다”(위클리경향 2009.12.08)

아직 뚜렷한 대응책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올해 말에서 늦어도 내년, 국제사회는 인류의 이후 운명과 관련한 중요한 결정을 내린다. 이 거대한 변화의 물결에 적응하면 살아남을 것이고,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할 것이다. 산업도 경제도, 개인·국가도 모두 마찬가지다. 사회패러다임도 달라질 것이다. 앞으로 한국사회가 나갈 좌표는 무엇일까. 변화를 대비하는 한국호의 준비는 충분할까.

이 변화의 핵심키워드는 ‘기후변화’다. 도대체 ‘기후변화’는 무엇일까.
최근에 개봉돼 화제를 모은 영화 <2012년>. 지진, 화산폭발, 쓰나미에 이르기까지 인류가 겪을 수 있는 자연재난이 총체적으로 묘사돼 있다. 태양 폭발이 지구 내부를 전자레인지처럼 달궈 일정한 분기점을 넘어 인류의 대부분이 멸망하는 대재난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영화적 상상력에 기초한 공상이다. 그러나 현실의 ‘기후변화’는 이미 비슷한 재난을 일으키고 있다. 그 핵심은 온실가스 배출에 의한 지구온난화다.

온실기체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이산화탄소다. 인간이나 포유류의 호흡을 통해서도 이산화탄소가 배출되지만 핵심은 산업혁명 이후 석유나 석탄과 같은 화석연료 사용으로 인한 대량의 이산화탄소 배출이다. 대기 중에 배출된 온실기체는 지구 표면의 복사열 방출을 막는다. 그래서 ‘기후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한국도 기후변화 영향 ‘뚜렷’
여기까지는 상식이다. 빙하가 녹아 익사하는 북극곰이라든가 해수면 상승으로 남태평양의 섬나라 투발루의 국토 대부분이 물에 잠기게 됐다는 이야기는 이미 널리 알려졌다. 그러나 기후변화는 먼 나라 일이 아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해수면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안병옥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소장의 말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그 가운데에서도 제주도가 해수면 상승이 가장 빠르다. 조사 결과를 보면 1년에 0.6㎝씩 올라가고 있다. 해수면 상승은 연안 침식을 불러오고 있다. 매해 여름 해수욕장 개장 전에 파도에 쓸려 유실된 모래를 보충하기 위해 트럭을 동원해 모래를 퍼나르는 장면은 익숙한 풍경이다. 지금처럼 침식이 계속되면 전국의 유명 해수욕장에서 여름에 해수욕을 하기 어려운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안 소장의 말을 계속 들어보자. “관련 기후문제 전문가 회의에서 이미 여러차례 지적됐다. 연안지역 주민들의 경우 사실 지금 굉장히 불안하다. 기후변화 때문이건 아니건 해일이나 폭풍이 닥치는 주기가 빨라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경우 연안지역에 빽빽하게 주거지를 만든 경우가 많다. 막상 해일과 같은 재앙이 터지면 대책이 없다.” 영화 <해운대>의 재앙이 현실화될 수도 있다는 주장이다.

해수면 상승뿐만이 아니다. 지난 수 십 년 동안 보기 어려웠던 말라리아, 댕기열 등 열대성 전염병이 창궐하고 있다. 가장 가시적인 피해는 여름철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 수 증가다. 1994년에 일어난 여름철 이상고온 현상이 단적이다. 전문가들은 그해 서울에서만 약 700명이 폭염으로 인해 추가로 사망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안 소장은 덧붙였다. “2003년에 유럽에서 3만5000여 명이 죽었다. 그 가운데 프랑스가 1만5000명으로 가장 많았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미국에서도 시카고에서 1995년에 많은 사람이 폭염으로 사망한 뒤 폭염경고시스템을 만들었다. 그에 비해 우리는 아직 체계적인 대비가 부족하다.”

그렇다면 왜 ‘올해 말에서 내년’이 변화의 기점인가. 지난 11월17일 한국정부는 “2020년 국가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배출전망치 대비 30%로 줄이는 것을 확정했다”고 발표했다. 12월7일부터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리는 유엔기후변화회의에 앞선 발표다. 76개국 정상이 참여할 이 회의에선 2020년까지 국가별 감축목표치에 대한 논의와 협상이 이뤄진다. 회담이 임박하면서 각 나라는 경쟁적으로 자신의 목표치를 발표하고 있다. 당초 이 회담에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던 미국도 최근 입장을 선회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직접 참여해 자국의 목표치를 발표할 계획이다. 회의 결과 각 국의 감축안이 확정되면 국가 차원의 감축 세부계획이 나오게 된다. 이전까지는 ‘오염원’으로 취급되지 않은 ‘이산화탄소(CO2)’가 규제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시민들의 일상생활에는 어떤 결과를 초래하게 될까.

“분명히 고통은 있을 것이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하루에 한 번 샤워하는 것은 더 이상 안될 수도 있다. 분명한 건 이전과 같은 생활양식의 유지가 더 이상 안 된다는 것이다.” 이상헌 한신대 교양학부 교수의 말이다. 이산화탄소 배출을 치환하면 에너지 소비다. 전문가들은 에너지 소비를 축으로 사회·경제 패러다임이 바뀔 것으로 전망한다.

세제, CO2 배출 기준 재편 불가피
자동차를 중심으로 한 소비생활은 규제가 불가피하다. 단기적으로는 자동차번호 홀짝운영제, 혼잡통행료 징수, 도심 진입금지책 등이 나올 수 있다. 정부정책도 자전거 타기 활성화나 철도 등 대중교통 지원책을 중심으로 전환할 것이다. 이미 국토해양부는 관련 로드맵을 작성하고 실행에 옮기고 있다.

기름값도 치솟는다. 매장화석 연료의 총량은 늘어나지 않기 때문에 기후변화와 무관하게 기름값은 사용하면 할수록 올라갈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석유와 석탄 등 매장화석 연료의 생산량이 이미 정점에 도달했다고 평가한다. 게다가 자동차의 온실가스 배출 기준은 강화된다. 이미 유럽연합(EU)은 2012년부터 ㎞당 평균 130g 이상의 CO2를 배출하는 차량에 대해 단계적으로 벌금을 부과하는 배출규제책을 내놓고 있다. EU의 목표치는 2020년까지 ㎞당 95g로 CO2 배출량을 감축하는 목표를 설정해 놓고 있다.

석유와 석탄의 가격 상승은 전기를 생산하는 에너지 산업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조성돈 환경정의 초록사회국장은 “어떻게 되든 전기요금의 현실화는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여기서 현실화는 전기의 생산단가에 근접한 요금을 말한다. 현재 전기생산에는 막대한 정부 보조금이 들어가고 있다. 국가 재원이 투입되는 것은 곧 국민들의 세금이 투여되고 있다는 뜻이다. 조 국장은 “많이 쓰는 쪽이 더 많이 부담하는 것이 맞다”면서 “이를테면 현재 산업용 전기요금은 일반요금보다 싸게 공급되고 있으니 일반국민들이 돈을 내서 산업계를 도와주는 꼴”이라고 말했다.

윤순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에너지를 많이 쓰는 사람은 많이 내고 적게 쓰는 사람은 적게 내는 방향으로 관련 세제를 재편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한다. 그렇다고 이게 ‘세금폭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윤 교수는 “에너지 관련 세금을 올리는 대신 소득세나 법인세를 낮추고, 전기요금의 경우도 어디까지를 생활기본요금 구간으로 설정하냐에 따라 조절이 가능하다”며 “반대로 말해 아껴 쓰고 덜 쓰는 사람이 적게 내는 세금시스템이 더 좋은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반적으로 생활상 편의가 줄어드는 것은 확실하다. 조성돈 국장은 “극단적으로 보면 소련이 몰락한 직후 생활재 공급이 끊긴 러시아나 동구권 사회를 생각하면 된다”고 말했다. 에너지 소비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냉·난방비는 지금보다 늘어난다. 에어컨 대신 선풍기, 겨울철에는 내복 입기가 장려된다. 물값도 생산비용 때문에 오를 수밖에 없다. 조명이나 난방도 절전형 제품이 지금보다 선호될 수밖에 없다.

물가는 어떻게 될까. 수송비가 대폭 늘어나기 때문에 이를테면 칠레산 농산물이 지금처럼 시장에 싼값에 공급될 수 없다. 대신 가까운 곳에서 경작되는 ‘로컬 푸드’가 선호된다. 대형마트는 마트대로 생존책을 모색하겠지만 도보나 자전거로 이동할 수 있는 가까운 곳의 재래시장도 다시 활성화될 계기가 될 수 있다. 간단히 말해 대량생산·대량소비라는 현재의 생활양식이 더 이상 유지가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노동시장도 변화가 불가피하다.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대규모 장치산업에 대한 국가의 직접적인 규제로 외형적인 총적 성장은 억제된다. 신·재생에너지 등 대체노동시장이 창출되지 않으면 곧바로 고용 불안으로 이어진다.

대안적 삶 양식 확립 계기될 수도
그렇다고 이런 생활상 변화가 꼭 ‘재앙’ 또는 ‘디스토피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기후변화에 의해 강제됐지만 지금까지 낭비적인 에너지 사용 습관을 버리고 대안적인 삶과 사회체제의 출발점일 수 있기 때문이다. 윤 교수는 “2005년이나 1990년을 기준으로 에너지 총사용량을 묶는다는 것은 원시생활로 돌아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안준관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실제 현재 우리나라의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은 영국, 일본, 독일을 다 추월했다”면서 “다시 말해 똑같은 경제활동을 하면서 에너지 효율은 낮은 낭비적인 이용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에너지 효율을 높이기 위한 기술혁신도 필요하지만 지금보다 에너지 사용을 줄이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문제는 앞으로다. 에너지의 총량적 규제는 결국 각 부문에 규제 총량이 어떻게 할당되냐에 달렸다. 시민·환경단체들은 녹색성장위원회가 내놓은 ‘2020년까지 배출전망치 대비 30% 감축안’의 실상을 뜯어보면 ‘산업의 국가경쟁력’이라는 미명 아래 산업 밖의 수송·가정에 감축 책임의 상당 부분을 떠넘기는 형식으로 만들어졌다고 주장한다. 실제 녹색성장위는 이번 안을 도출하기 위해 70여 차례 공청회와 간담회를 갖는 등 의견수렴 절차를 거쳤다고 밝히고 있지만 관련 논의는 산업계와의 조율이 대부분이었다. 김종남 환경연합 사무총장은 “녹색성장위가 3개 시나리오로 논의했다고 하지만 각 안에서 산업계에 들어가는 부문별 할당량 상 편차는 그리 크지 않다”면서 “말하자면 산업계보다는 수송과 건축 부분에서 3개안의 ‘차이’가 나는 셈인데, 결국 개인소비자들에게 부담을 지우겠다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김 총장은 “지식경제부 등 다른 부처의 지속된 저항이나 국가경쟁력강화특위 등 다른 데서 추진하는 규제완화책 등을 볼 때 앞으로 온실가스 규제의 구체적인 할당 내용이 어떻게 될지 우려스러운 것이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정부계획 저탄소녹색성장 맞나
기후변화에 대한 정부와 시민사회의 상반된 인식도 두드러진다. 녹색성장위원회는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 설정 결과 국내총생산(GDP)은 0.49% 감소하고, 가계소비 역시 연간 21만7000원이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도 “올해부터 2013년까지 녹색성장 5개년 계획에 따라 총 107조원이 투입되면 ‘녹색성장을 통한 추가성장’으로 GDP 증대는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 실상을 뜯어보면 다르다. 107조원 예산에는 정부 쪽에서 21조원으로 주장하는 4대강 예산이 포함되어 있다. 안준관 연구원은 “녹색성장 5개년 계획에 잡혀 있는 예산을 보면 저탄소녹색성장의 핵심인 에너지 효율 향상과 신·재생에너지의 투자는 매우 저조한 반면에 4대강 살리기 및 사업과 연계한 강변 자전거길 조성에 25조3000억원을 투자하는 등 포장만 녹색인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원전 건설을 통해 돌파하려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환경정의 조 국장은 “과거 방사능폐기물처리장을 둘러싼 갈등을 볼 때 이후 여러 기의 원전 건설을 통해 기존의 화력을 대체하겠다는 발상은 거의 실현이 불가능하다고밖에 볼 수 없다”면서 “원자력발전을 친환경 내지 저탄소녹색 성장으로 포장하려는 것은 국제사회의 웃음거리가 될 수밖에 없다”라고 주장했다.

안병옥 소장은 이번 기후변화와 관련해 논의되는 과정도 과거 청계천이나 4대강과 마찬가지로 전형적인 톱다운 방식, 즉 기업운영 방식이 관철됐다고 평가했다. 위에서 ‘지시’를 내려 그 틀 안에서 토론을 한정시킨 다음 정하는 방식이라는 지적이다. 녹색성장위원회 기후변화대응팀의 손옥주 기후변화정책과장은 “국가 차원에서 온실가스 감축 예상치를 내놓은 것도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에 운용 과정에서 논란은 있을 수 있을 것”이라면서 “이미 민·관 협력 채스크포스(TF)팀을 꾸려 구체적 논의를 진행하고 있지만 앞으로 관련 학계·전문가나 국민들에게 좀 더 열려 있는 논의 체계를 만들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