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4일 도이치뱅크는 2016년 이후 석유산업이 붕괴할 수도 있다는 예측을 담은 투자보고서를 내놓았다. 다소 충격적이기까지 한 이 보고서는, 상당히 설득력 있는 근거를 바탕으로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석유의 발견으로 고래기름 산업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던 것처럼, 석유시대의 종말은 에너지 기술의 혁신으로 앞당겨 질 것이라는 것이 보고서의 요지이다. 보고서는 석유의 공급, 수요, 가격변동의 세 가지 측면을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1. 석유공급은 2016년 이후 감소
지난 8월 ‘쟁점과 이슈’를 통해 “석유가 우리를 버리기 전에 우리가 먼저 석유를 떠나야 한다”는 국제에너지기구의 바이럴(Birol)박사의 주장을 소개한 바 있다. 석유생산량은 향후 10년 이내에 최고치를 기록한 후 점차 감소하기 때문에 앞으로 5년 이내에 석유위기가 찾아온다는 것이 바이럴 박사의 분석이었다. 그 근거는 세계의 주요 유전들의 생산량 감소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도이치뱅크에서는 이에 덧붙여 산유국들의 유전개발 투자비용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지목했다. 현 수준의 투자규모로 판단할 때 석유공급량이 최대가 되는 시점은 2016년으로서 하루 9천만배럴이 생산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2009년에 비해 5% 증가한 양에 불과하다.
2. 기술혁신으로 석유소비 감소의 견인차
석기시대가 끝난 것은 돌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철을 다루는 기술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하이브리드와 전기자동차는 석유소비량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붕괴기술(disruptive technology)이 될 것이다. 붕괴기술이란 과거의 상품을 완벽하게 대체해 기존 산업의 종말을 초래하는 기술을 말한다. 디지털 카메라가 필름산업의 종말을 가져온 것이 좋은 예일 것이다. 현재 갤런당 29마일에 불과한 자동차 평균연비는 2020년에는 44마일로 늘어날 전망이다. 전 세계 차량연료 소비량의 12%를 차지하는 미국의 경우 2030년까지 현재의 46% 수준으로 석유소비량이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배럴당 30불 정도인 천연가스는 난방과 발전분야에서 석유를 대체하게 될 것이다.
3. 석유가격 상승으로 소비패턴이 변하고 연료효율이 상승
향후 석유가격은 2016년에 배럴당 175불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며, 이를 기점으로 감소해 2030년에는 배럴당 70불 수준으로 거래될 것이다. 이때는 하루에 약 8천만 배럴가량이 거래되는데, 이는 현재보다 8% 정도, 기존 예상치보다 40% 적은 양이다.
석유가 등장하기 전까지 고래기름은 양초와 등불의 연료로 널리 이용되었다. 하지만 고래 어획량은 1845년에 정점을 기록한 후 감소하기 시작했으며, 약 6년 후에는 가격이 2배 이상 급등하였다. 1860년 미국 펜실베니아의 한 마을에서 석유가 발견되면서, 고래기름의 수요가 급격히 감소하고 고래기름 산업은 결국 1880년대 이후 종말을 맞게 되었다. 석유산업도 이와 비슷한 경로를 걷게 될 것이라는 것이 도이치뱅크의 주장이다.
캐나다의 오일샌드나 브라질의 심해유전 등은 석유수요의 감소에 따른 가격 하락으로 경제성이 떨어질 경우 개발이 중단될 수도 있다. 석유회사들은 장기적인 유전탐사보다는 단기적인 채굴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화될 것이다.
도이치뱅크의 보고서는 석유산업의 미래를 예측해 투자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투자보고서의 일종이다. 현재 기술개발의 흐름과 수준으로 볼 때 도이치뱅크의 예측이 현실로 나타날 개연성은 상당히 높다. 석유중독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면 가까운 미래에 문득 석유가 우리를 버렸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될 지도 모른다(기후변화행동연구소 류종성 해외연구위원).
관련기사>> 국제에너지기구 “석유가 우리를 버리기 전에 우리가 먼저 떠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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