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는 수많은 생명체들의 요람이다. 신에 의한 천지창조이건 빅뱅에 의한 우연의 산물이건, 지구는 인류에게 최대의 선물임에 틀림없다. 지질학적 연대로 보면 인류의 탄생 이전에도 지구는 많은 환경변화를 겪어왔다. 하지만 지난 1만년 동안의 지구환경은 매우 안정적인 편이었다. 지질학에서는 이 기간을 홀로세(Holocene)라고 부른다.
약 5천 년 전쯤 4대문명이 시작된 이래 인류는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왔다. 하지만 산업혁명 이후 현대문명의 급속한 발전은 인류에게 자연을 정복할 수 있는 힘을 부여했으며, 무분별한 자연이용은 지금의 극심한 환경파괴를 초래했다. 지난 1만년동안 안정적이었던 환경이 불과 2백년만에 불안정하게 바뀐 것이 자연적인 현상이라고 주장하는 억지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의 지구환경은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 것일까?
이러한 질문에 답을 구하기 위해서는 작년 9월 네이처지에 실렸던 스웨덴 ‘스톡홀름 레질리언스센터*(Stockholm Resilience Centre)’의 논문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논문에는 9개 분야를 대상으로 지구생태계의 건강성을 최초로 평가한 결과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논문이 적용한 평가항목과 기준은 완전히 새로운 것이기 때문에 객관성과 대표성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런 우려를 불식시키기에 충분하리만큼 공저자로 참여한 학자들의 면면은 화려하기만 하다.
공저자에는 오존층 규명으로 노벨화학상을 수상했던 크루첸(Crutzen) 교수, 생태계 가치평가 분야에서 큰 획을 남긴 코스탄자(Costanza) 교수, 독일의 기후변화 과학정책을 이끄는 쉘른후버(Schellnhuber) 교수 등이 포함되어 있다. 또한 스톡홀름 대학에 속한 스톡홀름 레질리언스센터는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해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의 다학제간 연구를 집중적으로 수행하는 세계 몇 안 되는 연구소로서 이 연구소에 속한 교수와 연구원들도 논문 작성에 대거 참여했다.
논문의 핵심 내용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특정 부문에서 안전기준을 초과하게 되면 자연재앙을 초래하게 된다는 점과, 이미 9개 부문 중에서 3개 부문은 안전기준을 넘어섰다는 것이다. 9개 부문이란 기후변화, 바다산성화, 오존층 파괴, 영양염 순환, 담수이용, 토지이용, 생물다양성 손실, 대기 중 먼지입자 농도, 독성물질 오염을 말한다. 이 가운데 안전기준을 넘어선 3개 부문은 기후변화, 생물다양성 손실, 영양염 순환이다. 이 글에서는 기후변화 부문에 대한 평가결과를 좀 더 자세히 소개하기로 한다.
기후변화의 경우 두 가지 기준이 제시되었다. 하나는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350ppm 이하일 것과, 다른 하나는 지구에 전달되는 태양에너지의 증가량이 산업혁명 이전에 비해 1W m-2 이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기준을 정하는 과정에서는 다음의 세 가지의 점이 고려되었다.
첫째 기존의 기후모델에서는 장기간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모델에서는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2배로 증가할 때 지구 평균기온이 3℃가량(2도-4.5도 범위) 올라갈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모델들이 간과하고 있는 것은 기온 상승에 따른 이차적인 효과이다. 빙하가 녹고 숲이 황폐화되면서 태양열 반사도가 떨어져 기온상승폭이 훨씬 더 커질 수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만일 이러한 이차효과까지도 고려한다면 이산화탄소 농도가 2배 증가할 때 기온은 평균 6℃가량(4도-8도 범위) 상승하게 된다. 이 정도의 기온상승은 지난 1만년 동안 안정적으로 진화해왔던 생태계가 더 이상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을 만큼 심각하게 교란시킬 수 있다.
둘째는 극지방의 빙하문제다. 과거 1억년동안의 기후자료를 분석해보면 지난 5천만년 동안의 냉각기는 이산화탄소 농도와 상관관계가 있으며, 이산화탄소가 450ppm에 달하면 대부분의 빙하가 녹게 된다. 따라서 350-550ppm 사이에 빙하가 모두 없어지게 되는 지점이 분명히 존재하며, 따라서 제안된 350ppm은 현재의 극지방 빙하가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는 기준이라는 것이다.
셋째 일부 지역은 이미 지난 1만년 동안의 안정적인 상태에서 벗어나고 있다. 북극해의 여름철 빙하, 산 정상의 대규모 빙하, 그린란드와 남극 서쪽의 빙하들의 범위가 급속도로 축소되고 있으며, 이로 인해 과거 10-15년간 해수면상승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기후변화를 포함한 9개 부문의 환경변화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에 있기 때문에, 이들 모두를 안전기준 이내로 균형 있게 유지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게 해야만 지구가 지난 1만년동안의 유지해온 안정된 상태를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류가 앞으로 얼마나 오랫동안 지구에서 살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지난 1만년간(홀로세)의 안정된 환경을 유지하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의무이자 책임이다. 모든 시스템은 임계조건을 넘어서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새로운 평형상태를 이룬다는 것은 과학계의 정설에 속한다. 코펜하겐의 실패는 인류가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널 수도 있다는 우려를 남기고 있다(기후변화행동연구소 류종성 해외연구위원).
*레질리언스는 특정 시스템이 외부 충격에 견디는 저항력(resistance)와 붕괴 후 다시 원상태로 회복할 수 있는 재조직력(reorganization)을 포함하는 단어입니다. 적절한 우리말이 없어 그대로 표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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