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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눈에 비친 연구소

'기후변화 홍보’ 헛심만 쓰는 정부 (한겨레 2009.7.1)

‘기후변화 홍보’ 헛심만 쓰는 정부
영국선 국민들 행동변화 자극에 초점
한국은 일방적 실천방안 알리기 몰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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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은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행동에 나설 준비가 돼 있다. 정확한 정보와 행동 방법만 알려주면 바로 실천에 들어갈 것이다.’

정부의 기후변화대응 종합기본계획에 따라 진행되고 있는 대부분의 대국민 기후변화 홍보 프로그램들은 이런 전제를 바닥에 깔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온실가스 성적 표시제 도입, 사이버 실천운동 전개, 캠페인·리플릿·동영상 등 다양한 수단을 통한 실천지침 보급 등이 모두 그런 것들이다.

정말 국민은 언제든 기후변화 대응 행동을 실천할 준비가 돼 있을까? 정부는 그렇게 생각하고 홍보를 펼치고 있는 듯하지만, 정작 이런 의문에 ‘그렇다’고 대답할 근거는 갖고 있지 않다. 지난해 1~2월 환경부가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벌인 ‘기후변화대응 대국민 인식도 조사’결과가 있지만, 이 조사는 12개 설문 문항 가운데 11개가 국민들이 기후변화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파악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국민들의 기후변화에 대한 태도나 행동과 관련된 설문은 단 하나에 불과했다.

정작 비슷한 시기 대한상공회의소 지속가능경영원이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를 보면, 기후변화에 대응할 필요성을 느끼는 확신지수는 52.01점이었고, 대응 행동에 나서는 행동지수는 30.85점에 불과했다. 아직 국민 대부분의 기후변화에 대한 태도가 구체적 실천에 나설 수 있는 정도에서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조사 결과다. 이런 조사 결과에 비춰 보면 단기간에 국민 사이에 기후변화 대응 행동 참여를 확산시키는 것을 목표로, 관련 정보와 행동 방법, 실천 프로그램 소개에 초점을 맞춘 홍보 계획은 현실과 동떨어진 것인 셈이다.

전문가들은 정부 기후변화 대응정책이 성공하기 위한 출발점은 국민들의 기후변화에 대한 태도라고 지적한다. 안병옥 기후변화행동연구소장은 “기후변화의 주범인 온실가스 대부분이 국민의 소비 생활과 연결돼 배출되고, 또 온실가스 감축 비용은 최종적으로는 상품 가격이나 세금에 반영돼 국민이 부담해야 한다는 점에서 국민들이 기후변화에 어떤 태도를 보이느냐가 매우 중요하다”며 “하지만 정부의 기후변화 홍보를 보면 국민들의 태도를 실천 단계까지 이끄는 것에 대한 고민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런 점에 대해서는 정부 홍보 관계자들도 고개를 끄덕인다. 한 중앙 부처의 홍보 책임자는 “국민이 기후변화 대응에 나서도록 만들려면 국민의 태도를 행동 변화로 넘어갈 수 있는 크리티컬 포인트(임계점)까지 끌어올려야 하는데 이런 프로그램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기후변화 홍보 계획의 문제점은 영국의 기후변화 홍보 계획과 비교해 보면 잘 나타난다.(표 참조) 두 나라의 기후변화 대응 홍보 프로그램의 성격을 보면, 한국은 국민에게 기후변화 대응 실천 방안을 ‘알리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는 반면, 영국의 프로그램은 다양한 방식을 통해 국민들의 행동변화를 ‘자극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에서 가장 큰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두 나라 홍보 프로그램의 차이는 홍보의 수용자인 국민에 대한 이해의 차이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홍보 계획이 정보 전달에 초점을 맞춘 것은 국민들을 환경 관련 홍보를 통해 행동이 바뀔 수 있는 잠재력이 매우 높은 사람들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영국의 기후변화 대응 프로그램은 홍보의 수용자인 국민들이 기후변화와 관련한 홍보 등의 자극에 대한 수용성이 낮은 사람들이라는 인식에서 출발하고 있다.

이승조 중앙대 교수(신문방송학)는 “효과적인 기후변화 홍보를 하려면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민이 어느 정도까지 희생을 감수할 자세가 돼 있는지에 대한 충실한 조사가 선행돼야 한다”며 “이런 조사를 통해 국민들이 기후변화 정책 추진과 대응 행동에 저항감을 느끼는 부분을 철저히 검토한 뒤, 이런 저항감을 누그러뜨리고 행동 변화를 유도할 수 있는 종합적인 전략을 수립해 집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정수 기자 jsk21@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