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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눈에 비친 연구소

[커버스토리]아열대기후가 한국인 삶을 바꾼다

2070년에 이르면 한반도 남녘에서 겨울이 사라진다. 지난 100년간 지구 평균기온은 0.74도 올랐지만 한반도는 이보다 2배 가량인 1.5도나 상승했다. 지금 같은 속도로 온난화가 지속되면 고산지대를 제외한 한반도 남녘 대부분이 아열대기후로 변한다는 게 기상청의 보고다. 최근의 스콜을 연상시키는 국지성 집중호우와 아열대성 고온다습 역시 그 징후 중 하나라는 분석이다. 당신의 자녀들이 노인이 되는 즈음에 동남아와 비슷한 환경에서 삶을 영위해야 한다는 얘기다.

자연의 변화는 사람들의 삶에도 변화를 불러 온다. 사계절에 길들여 있던 의식주와 체질의 변화는 물론이고 슈퍼폭풍, 집중호우와 이상가뭄, 물부족사태 등에 직면할 것으로 예견된다. 더 나아가 절기에 따른 세시풍속 등 전통문화와 단절되어 민족성마저 바뀔지 모른다. 게다가 없는 사람들에겐 아열대는 큰 고난이다. 폭염과 각종 질병에 심각하게 노출되는 것. 아열대기후가 불러올 우리 삶의 변화, 그 불편한 내일을 미리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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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에게 더욱 뜨거운 아열대, 빈자의 고통

강수량의 증가는 주거환경에 큰 변화를 줄 것으로 보인다. 제습기능의 가전제품 구비는 물론이고 습기가 많이 올라오는 1층은 필로티 등으로 대부분 비워둘 것이다. 또한 고지대에 부촌이 형성될 가능성도 있는데, 습기가 많은 홍콩의 경우 지대가 높은 쪽에 고급주택가가 형성되어 있다. 또한 단시간에 많은 비가 내릴 경우 강의 범람과 주택 침수 등이 잦아지면 일본이나 네덜란드처럼 부양주택이 등장할 수도 있다. 옥상정원 등 에너지 절감형 주택문화는 이미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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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사막화에 의한 황사, 미세먼지 발생이 심각해 이에 대한 생활상의 대비도 큰 화두가 될 것으로 보인다. 황사로 인한 개인의 건강문제뿐만 아니라 미세먼지에 취약한 IT 등 산업에도 심각한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반도체의 경우 황사가 불면 불량률이 상당히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정밀장비 또한 미세먼지에 취약하다. 반기성 센터장은 “황사마스크의 발달을 보면 향후 아열대기후에 대한 위생 대책을 보는 것 같다”며 “봄철 레저활동에 있어 황사 대책산업이 크게 성장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기후변화는 특히 건강에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폭염일수 빈도와 강도의 증가에 의한 사망자 발생이 늘 것으로 보인다. 2003년 프랑스 파리의 경우 8월 초에 40도를 넘는 폭염이 발생하자 노인과 병약자 등에서 사망자 수가 1만5000명에 이르렀다. 미국의 경우 매년 평균 240명 이상이 폭염과 관련하여 사망하고 있다. 고상백 교수는 “전세계적으로 기온과 사망의 관계를 연구한 역학연구에 의하면 기온과 사망은 U, J자 형태를 보인다”며 “일반적으로 17~25도 사이에는 사망률이 낮고 이보다 기온이 높거나 낮을 경우 사망률이 증가한다”고 분석했다.

고 교수는 매개곤충과 미생물 등으로 인한 감염성 질병이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고 교수는 “기온, 강수량, 습도의 변화는 원인 병원체와 매개동물, 인간에게 영향을 준다”며 “특히 모기를 매개로 하는 전염병과 설치류를 매개로 하는 전염병은 기후변화의 영향을 쉽게 받는다”고 말했다. 아주대 예방의학교실 장재연 교수팀이 강수량·최고 기온·습도와 질병의 관계를 분석한 결과 쓰쓰가무시증·말라리아·신증후군출혈열·렙토스피라증·세균성이질·비브리오패혈증이 지구온난화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장 교수는 “대부분의 질병 발생 시기가 늦춰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며 “쓰쓰가무시증은 2001~2005년 10월에 정점에 이른 뒤 11월에는 뚝 떨어졌으나 2006~2007년에는 11월에도 환자가 10월만큼 발생했다”고 말했다.

최근 제주도 서귀포에서는 열대·아열대지방 풍토병인 ‘뎅기열’을 전파시키는 ‘흰줄숲모기’ 유충이 발견되기도 했다. 뎅기열 바이러스를 가진 흰줄숲모기에 물리면 발열, 두통, 근육통이 나타나고 출혈과 순환장애 등 증상이 악화될 경우 사망에 이를 수 있다. 뎅기열은 지난 1991년부터 4년 동안 아시아·태평양지역을 휩쓸어 35만명의 환자를 발생시킨 바 있다.

문제는 이 모든 질병에 노인이나 노숙자, 빈민 등 사회적 소외계층, 약자들이 심각하게 노출된다는 것이다. 폭염이 와도 돈 있는 사람들은 냉방시설과 의료기관의 힘으로 예방하거나 치료할 수 있지만, 없는 사람은 기온 상승에 그대로 노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에너지 비용이 상당히 올라간다면 중산층까지도 냉방에 부담을 느낄 것이고, 이들 또한 폭염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얼마 전엔 쪽방촌의 방 온도가 바깥보다 5도 높고 한낮 습도는 72%까지 오른다는 조사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성균관대 사회의학교실, 기후변화행동연구소 하자작업장학교가 7월 27일부터 8월 6일까지 서울 돈의동 쪽방촌의 65세 이상(평균 연령 73세) 고령 가구 20곳의 실내기온을 조사한 결과, 여름철 실내 권고 기준치인 26~28도보다 4~5도 높은 31~32도로 조사됐다. 단열 시설이 전무한 노후 건물에 미로처럼 작은 방들이 붙어 있어, 마치 집열판 같은 슬레이트 지붕으로 모아진 열기가 밤새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높은 습도는 더 큰 골칫거리. 볕이 잘 들지 않는 위치에 있어 퀴퀴한 방안은 불쾌지수를 높일 수밖에 없다. 이들 가구 내 습도는 오전에는 실외와 차이가 없지만 오후에는 평균 72%로 실외보다 12% 가량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건강을 위해 권고되는 여름철 습도(60%)보다 매우 높은 수치다.

때문에 노인들의 체온도 그만큼 빨리 올라가고, 이는 수면 부족과 스트레스로 이어진다. 실제 조사 결과, 조사 대상 노인들의 평균 수면시간은 2시간30분에 불과했고, 절반 이상의 노인이 어지러움 증세를 호소하고 있다. 고령인 이들은 대부분 고혈압·당뇨병·심장질환·관절염·호흡기질환 등의 지병을 앓고 있어 폭염에 그대로 방치할 경우 병세가 악화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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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득진 기자 chodj21@kyunghyang.com>


(2010.09.14, 위클리경향 892호, 조득진 기자) 원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