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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눈에 비친 연구소

[한마당-김윤호] 쪽방촌

“하룻밤 4000원 하는 쪽방촌/ 한 명이 누우면 꽉 차는 공간에 겨우 터 잡고 살아/ 사람들은 늘 돈의동 하늘은 비좁다 소리친다”

‘쪽방촌 사람들’(이창호, 2001년)이라는 시의 첫 구절이다. 시의 소재가 된 돈의동 쪽방촌은 종묘 옆에 있다. 수습기자 시절이던 1984년 겨울 이 쪽방촌을 처음 보았다. 허리를 반쯤 꺾고 들어간 쪽방은 연탄가스 중독으로 숨진 한 청년의 보금자리였다. 서울 한복판에 있는 주거시설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열악한 곳에서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 쪽방촌 환경은 지금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엊그제 기후변화행동연구소와 성균관대 사회의학교실 등이 공동으로 돈의동 쪽방촌 거주자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통풍이 안 되는 데다 낮의 열기가 밤에도 빠지지 않아 여름철 실내 기온이 31∼32도에 달한다고 한다. 한증막 같은 더위 때문에 쪽방촌 노인들의 평균 수면시간은 2시간 반에 불과하다.

서울시에 이런 쪽방촌들이 네 곳 더 있다. 중구 남대문로, 종로구 창신동, 용산구 동자동, 영등포구 영등포동 등이다. 지난해 서울시 통계에 따르면 서울시내 5대 쪽방촌 주민은 3240명. 기초생활수급자(31%) 65세 이상 독거노인(19.7%) 장애인(12.8%) 등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는 살아가기 힘든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한나라당 차명진 의원이 지난달 동자동 쪽방촌에서 1박2일을 보낸 후 자신의 홈페이지에 6300원(1인 가구 최저 생계비)으로 ‘황제의 식사’가 부럽지 않은 생활을 했다는 내용의 체험기를 올렸다가 네티즌들로부터 뭇매를 맞았다. 차의원은 다음날 사과의 글을 다시 올려야 했다.

이재훈 지식경제부 장관 후보자는 부인이 2006년 창신동 쪽방촌 건물을 사들인 것으로 드러나 투기 의혹이 제기되자 국회 청문회에서 “아내가 노후를 대비해 구입했다”고 했다가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노후에 쪽방촌에서 살려고 샀다는 말이냐”는 비아냥도 나왔다. 오죽 궁색했으면 노후대비용이라는 변명을 했을까마는 한나라당 내에서까지 경악을 금치 못했다는 반응이 나온 것을 보면 이 후보자가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듯하다. 결국 이 후보자는 청문회 후 문제의 쪽방촌 건물을 사회에 기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한다.

친서민 정책을 펼친다는 한나라당과 정부가 가뜩이나 더위에 지친 쪽방촌 사람들을 더 덥게 만드는 것 같다. 쪽방촌 사람들은 서민이 아니라 빈민이라 그런가.


김윤호 논설위원 kimyh@kmib.co.kr


(2010.8.24, 국민일보, 김윤호 논설위원) 원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