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생각 나눔

온실가스 감축은 생존 문제, 낡은 경제 논리보단 승자의 길 가야

 [Hot Potato] "온실 가스 감축은 생존 문제, 낡은 경제 논리보단 승자의 길 가야"
● 빨리 도입돼야
1.jpg
 
 
             
                                                                                                                 
안병옥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소장
 
온실가스 감축은 당장의 경제적 부담 때문에 피해도 좋은 사안이 아니다. 그 이유는 그것만이 기후변화에 맞서는 외길이기 때문이다.
 
최경환 지식경제부 장관이 최근 온실가스 탄소배출권거래제 시행을 "독박 쓰는 것"으로 비유했다 한다. 한 나라 장관의 언어구사력이 그 정도 수준인지도 씁쓸하지만 본질은 그게 아니다. 문제는 그가 지닌 잘못된 인식에 있다. 배출권거래제가 왜 남 좋은 일만 시켜주는 일인가.

최 장관의 주장은 이렇다. "지구온난화를 막으려면 국제사회가 다 같이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배출권거래제를 시행하는 나라는 일부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에서 이 제도를 시행하면 우리만 손해 본다."

새로운 얘기는 아니다. 3년 전 중국에서도 똑같은 논리가 판을 쳤다. 배출권거래제 도입을 주장하던 한 대학교수는 관료사회와 언론의 집중 포화를 맞았다. 온실가스 감축 의무도 없는 중국 경제에 족쇄를 채우려 한다는 비난이 쏟아졌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지금 중국 정부 내에서 이 제도 도입을 반대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기후변화협상단 대표이자 국가발전개혁위원회 부의장인 시에 젠화(解振華)는 최근 미 언론과 인터뷰에서 "배출권거래제를 최대한 빨리 도입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다.
중국이 어떤 나라인가? 전력의 70%를 석탄화력 발전소에 의존하는 세계 최대 온실가스 배출국가다. 그럼에도 배출권거래제 논쟁에 종지부를 찍게 한 것은 두 가지였다. 에너지 효율이 곧 국가경쟁력을 결정한다는 중국 지도층의 인식과 석탄 수입량이 수출량을 초과하면서 고조된 에너지 안보에 대한 위기감이 바로 그것이다. 에너지효율이 낮은 공장들을 강제로 문 닫게 했던 몇 년 전 경험도 한 몫했다. 온실가스를 줄이기는커녕 일자리리만 없애는 결과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 산업계는 중국과의 수출 경쟁을 이유로 배출권거래제 도입이 시기상조라고 주장했다. 그러다 중국이 발 빠른 움직임을 보이자 이번에는 일본과 미국 타령이다.

두 나라 모두 배출권거래제 시행이 어려워진 마당에 우리가 먼저 나서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에너지효율이 우리보다 3배나 높은 일본을 핑계 삼을 때가 아니다. 일본은 세계 최고 수준의 초고효율 국가지만, 우리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과감한 감축 목표를 국제사회에 제시했다. 일각에서 주장하듯 배출권거래제 도입을 포기한 것도 아니다. 예정보다 1년 늦춰 2014년부터 시행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석유산업의 로비에 춤추는 공화당의 배출권거래제 발목잡기를 흉내 내다간, '고용 없는 성장'만 가속화하기 십상이다.

배출권거래제 반대론자들은 온실가스 감축을 늘 경제문제로 환원시킨다. "배출권거래제를 도입하면 산업계가 져야 하는 부담이 최소 20조원"이라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온실가스 감축은 당장의 경제적 부담 때문에 피해도 좋은 사안이 아니다. 그 이유는 그것만이 기후변화에 맞서는 외길이기 때문이다. 온실가스 증가가 지구 온도를 높여 인류를 파멸로 이끌 수도 있다는 전제가 없다면, 배출권거래제를 두고 갑론을박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온실가스 감축이 경제문제 이전에 '생존'의 문제인 이상, "당신들 먼저"라고 외치는 것은 의미가 없을뿐더러 도덕적으로도 용납하기 어렵다.

경제를 보는 제대로 된 눈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부담액 20조원이라는 수치의 신빙성도 문제지만, 온실가스 감축이 가져올 긍정적 효과는 왜 계산에 넣지 않는 것인가. 지구온난화가 진행될수록 기업이 지불해야 하는 비용은 눈덩이처럼 늘어난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에너지의 97%가량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배출권거래제를 통한 온실가스 감축이 일부 기업들에겐 독일지 모르지만, 국가적으로는 약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온실가스 감축에는 승자와 패자가 있을 수밖에 없다. 우리 기업들이 낡은 경제논리에 사로잡혀 승자의 길을 포기하는 우를 범하지 않길 바란다.

2011/01/16 한국일보 (기사원문보기)


<엮인 글 보기> [Hot Potato] "철강·자동차 산업 등 직격탄, 국제경쟁력 감안해 시행 신중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