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산골 구불구불 내린천 옆길을 따라가다 보니 신영복 선생님께서 예쁜 글씨로 써주신 ‘살둔 제로에너지하우스’의 표지판이 보입니다. 그곳을 알고 찾아 가는 사람도 쉬이 지나칠 수 있을 만큼 소박하지만 멋진 표지판이었습니다. 샛길로 들어서니 바로 낯익은 집 한 채가 의젓하게 앉아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강원도 홍천군 살둔 제로에너지하우스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왈-왈-”
덩치만 컸지 애교 덩어리인 진돗개 한 마리가 우리를 반겨주었습니다. 안타깝게도 건축주이신 이대철 선생님께서 급한 일로 집을 비우셔서 사촌 형이자 제로에너지하우스를 함께 지으신 김건우 선생님께서 저희들을 안내해 주셨습니다.
1. 이것들이 일당백을 하지요. - SIP와 시스템 창호
"우선 이것부터 보세요."
김 선생님께서 제일 처음 가리키신 곳에는 못생기고 두꺼운 벽체가 있었습니다. 사진에서 보이는 두꺼운 판(12mm짜리 OSB구조용 합판 양면과 그 사이 235mm짜리 탄소 스티로폼)이 바로 제로에너지하우스의 구조와 단열을 책임지고 있는 구조용 단열패널, 소위 SIP(Structural Insulated Panel)라고 불리는 것입니다.
구조단열패널, SIP(Structural Insulated Panel)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주방에는 공기 질 악화를 줄이기 위해 가스레인지를 두지 않았다.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이렇게 열 차단을 확실히 해주는 SIP가 더욱 빛을 발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어두운 색의 바닥재와 튼튼한 시스템 창호 그리고 천장을 덮고 있는 알루미늄 판 덕분입니다. 어두운 색의 바닥재가 열심히 열을 흡수하면 시스템 창호는 열 교환의 통로가 될 수 있는 창문 틈을 물샐틈없이 막아주기 때문에 한 번 들어온 열은 새어나가지 못합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쉽게 생각하고 지나칠 수 있는 천장에도 알루미늄 판을 덧대 복사열을 반사하게 하였습니다. 2. 새는 열은 잡고 공기는 깨끗하게 - 열회수환기장치와 페치카 집 외부를 둘러보다가 작은 연통같이 생긴 것이 바닥에서 쏙 올라와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김 선생님께서 “외부 공기를 빨아들여서 지하 열 교환기로 보내주는 흡입구”라고 설명해 주십니다. 잰 걸음으로 집 뒤편으로 가셔서 따라갔더니 지하실 입구를 활짝 열어 보여주셨습니다. 지하실에는 이름 모를 기계와 파이프들이 빼곡히 들어 앉아 있었습니다.
제로에너지하우스의 공기순환개념도 Ⓒ살둔제로에너지하우스 그 중 가장 큰 것이 열회수환기장치입니다. 외부에서 공기를 끌어들여 땅 속에 묻혀 있는 길이 약 1.5m의 파이프를 지나는 동안 지열을 이용해 적정한 온도로 만든 다음 실내로 들여보내는 역할을 합니다. 들어오는 공기만 관리하는 게 아니라 나가는 공기도 파이프와 이 장치를 거쳐야 하는데 집 안에서 오염된 공기가 천장에 붙어 있는 팬을 통해 열회수환기장치로 운반되면 이 기계가 열을 뺏은 다음 다시 밖으로 내보냅니다. 이렇게 해서 얻어진 열로 실내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이죠. 전기나 가스를 쓰지 않은 채 칼바람 부는 강원도의 계곡 속에서도 실내온도 20도 이상(입구는 21.9도, 거실은 23.3도)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실내·외 온도를 보여주는 온도계Ⓒ기후변화행동연구소 살둔제로에너지하우스는 3일 이상 해가 충분히 나지 않으면 보조 온열기구인 페치카(러시아식 벽난로)를 이용합니다. 땔감은 예전에 이 대지에 있었던 통나무집을 해체하면서 나온 목재를 쓴다고 하는군요. 집 뒤에 쌓아두신 땔감을 다 쓰려면 3~4년은 족히 걸릴 거라고 합니다.
천장에 있는 팬과 환기구는 실내 공기 오염도가 일정 수준에 달하면 자동으로 작동된다. Ⓒ기후변화행동연구소 거실 벽면의 페치카도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내부에 여러 겹의 벽을 가지고 있어서 불을 때는 입구의 온도가 800℃일 때 외부의 연통으로 나가는 열은 200℃ 미만이라고 합니다(연통의 온도는 약 60℃라고 하네요). 사실상 땔감은 금방 타지만 내화벽돌로 만들어진 페치카의 내부 벽이 흡수한 열을 약 48시간 동안 지속적으로 뿜어내기 때문에 제 역할을 톡톡히 합니다. 3. 온수도 걱정 없어요. - 진공 태양열 집열기 지난 겨울까지만 해도 이 집에서 가장 에너지를 많이 먹는 하마는 전기온수기였습니다. 겨울철 온수 사용과 난방에 쓰려고 집 앞 목재 데크 위에 커다란 태양열 집열기를 설치했지만 실제로는 큰 효과가 없어서 전기온수기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붕 위의 진공 태양열 집열기 Ⓒ기후변화행동연구소 하지만 이제 지붕 위에 새로 설치된 진공 태양열 집열기가 제 구실을 톡톡히 해주고 있습니다. 진공 태양열 집열기는 진공관 안에 들어있는 금속판이 태양열을 흡수해 물을 덥히는 방식으로 태양광 집열기에 비해 열 전환 효율이 높고 물이 직접 관 안으로 흐르지 않아 겨울에도 동파 걱정이 없다고 합니다. 4. 중요한 건 관심과 열정 - 책과 망치 이름을 알 수 없는 수많은 공구들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집 곳곳을 꼼꼼하게 설명해 주시던 김 선생님께서 마지막으로 보여주신 곳은 집 뒤편에 있는 으리으리한(!) 작업실이었습니다. 집보다 넓은 면적에 높은 층고와 복층 구조를 가지고 있는 작업실에는 말 그대로 없는 게 없었습니다. 온갖 톱과 망치, 임학을 공부한 주인의 손재주가 배어나는 새집과 나무 도마, 그리고 땀과 고민의 시간을 짐작케 하는 스케치까지 어느 것 하나 눈길이 가지 않는 것이 없었습니다. (다만 눈길 줄 곳이 너무 많아서 좀 힘들었지요.) 건축주 이대철 선생님은 이곳으로 오시기 전, 용인의 한적한 곳에서 살적에 집이 너무 추워 고생을 많이 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에너지가 적게 들면서도 따뜻한 집을 짓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 일념으로 여기까지 달려오셨습니다. 지금도 작업실에서 혼자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이것저것 고민하고 만들고 온갖 책과 잡지를 다 섭렵하고 계신다고 하네요. 작업실 한편에 놓여 있었던 늘씬한 자전거가 XX문고에서 이대철 선생님께 구매감사선물로 드린 것이라고 하니 사서 보시는 자료도 참 많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주변에서 보내주는 자료의 양도 엄청나다고 합니다. 어쩌면 ‘집주인의 에너지가 집을 가득 채워서 다른 에너지가 필요 없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슨 일을 하던 본인의 관심이 선행되어야 끝까지 열정적으로 이어나갈 수 있다는 걸 다시 한 번 깨달았습니다.
서재에 쌓여 있는 책과 잡지들 Ⓒ기후변화행동연구소 관심이 있다면 누구나 지을 수 있는데 아직까지는 실제로 지은 사람이 거의 없다는 아쉬움으로 제로에너지하우스 설명을 마치신 김건우 선생님은 저소득층 독거노인들에게 이런 집을 지어서 제공하면 좋겠다는 말씀을 덧붙이셨습니다. 김 선생님의 알찬 설명과 좋은 말씀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이번 달 22~23일 저희 연구소는 살둔 제로에너지하우스가 있는 홍천으로 워크숍을 갑니다. 국제도시훈련센터와 함께 저에너지 하우스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고 살둔 제로에너지하우스도 직접 방문하는 기회를 갖습니다. 아직 못 다한 이야기는 워크숍에서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기후변화행동연구소 김진아 연구원) ※ 살둔 제로에너지하우스 블로그 http://www.zeroenergyhouse.kr/
제로에너지하우스에 쓰인 SIP는 기성 제품이 아니라 손수 제작한 단열재여서 가격이 다소 비싼 게 흠입니다. 하지만 회색빛 탄소 스티로폼이 일반 스티로폼에 비해 화재에 더 안전하다고 합니다. 제로에너지하우스에는 SIP가 벽과 천장을 이루고 있어서 집 전체가 말 그대로 보온병처럼 단열재로 기밀하게 싸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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