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강’을 아파하는 하천생태학자 안병옥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소장
거짓말에도 색깔이 있다. 의사가 환자에게 하는 선의의 거짓말은 텔레비전 아침드라마 제목으로도 떴던 ‘하얀 거짓말’이다. 반대로 ‘검은 거짓말’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을 속이는 나쁜 거짓말이다. 근거가 전혀 없고 이치나 도리에도 맞지 않는 거짓말은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건 누구나 다 안다.
내친 김에 거짓말 얘기를 더 해 보자. ‘시집 안 간다’는 처녀, ‘밑지고 판다’는 장사치, ‘빨리 죽어야지’라는 노인네의 이른바 3대 거짓말은 ‘노란 거짓말’이다. 싹수가 노랗기 때문일까. ‘영원히 사랑할 거야’라는 젊은 연인끼리의 맹세는 결과적으로 ‘파란 거짓말’이 될 수도 있다.
색깔 있는 거짓말 얘기를 꺼낸 것은 최근 세계 시장에 나와 선풍적인 인기를 모으는, 아주 비싼 명품(?) 거짓말 하나를 소개하고 싶어서다. 포장은 그럴 듯한데 내용물은 전혀 그렇지 않은 ‘녹색 거짓말’이다. 영어로 골프의 그린라이(Green Lie)와 같은 철자이기도 한 이 말은 국제환경단체가 최근에 낸 ‘나무 바이오에너지: 녹색 거짓말’이라는 보고서의 제목에도 등장할 정도로 쓰임새가 많아졌다.
바이오에너지는 화석연료를 대체할 수 있는 청정에너지로 각광받고 있지만 녹색 거짓말쟁이에 의해 악용될 수도 있다. 바이오연료를 생산하기 위해 숲을 벌목한다든가 생장이 빠른 유전자 조작 수종을 재배하는 것이 그 예에 해당한다.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는 이익보다 숲과 생태계 파괴로 인한 손해가 더 크기 때문이다.
기후변화 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런 ‘녹색 거짓말’에 대항하는 민간 연구기관으로 지난해 6월에 출범한 기후변화행동연구소가 있다. 환경운동가 출신 생태학자인 안병옥 박사가 소장을 맡고 있다. 그는 4대강 사업과 관련해 반대 진영을 대표하는 전문가 가운데 한 사람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본업인 ‘기후변화행동’보다 이 문제에 더 골몰하는 듯하다. 4대강 사업이 기후변화를 명분으로 추진하는 것이니만큼 그 또한 기후변화행동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6월 25일 서울 경희궁에서 그를 만났다.
요즘 4대강 문제로 바쁜 듯한데, 본업이라고 할 수 있는 기후변화행동 연구는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잘되고 있습니다. 주로 연구 활동을 하는데, 연구도 행동이죠.(웃음) 그냥 행동이 아니고 연구 결과가 책상서랍에서 나와 법이나 제도를 바꾸는 데까지 이르도록 여러 가지 노력을 하는 것이니까요.”
주로 어떤 연구를 하고 있습니까.
“서울 돈의동 쪽방촌에 연세 드신 분이 많이 살아요. 기후변화 피해 가운데 지금도 일어나고 있고 사망자 수가 가장 많은 게 사실은 폭염에 의한 것이거든요. 홍수 피해보다 훨씬 많아요. 여름에 고온 현상이 나타나면 돈 있는 사람이나 젊은 사람은 선풍기나 에어컨이 있는 데를 금방 쉽게 찾을 수 있으니까 괜찮습니다. 그러나 65세 이상 노인 가운데 경제력이 없고, 특히 질병을 앓는 경우 목숨까지 잃을 수 있죠. 이번 여름에 의료진과 함께 쪽방촌에 가서 2주 동안 간단한 건강검진을 하고, 그 결과가 나오면 사회적으로 환기를 시켜서 대책을 마련토록 할 계획입니다. 국·공립 기관에서 하는 연구와는 좀 다르죠.”
어떤 측면에서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까.
“외국에서도 민간 부문의 싱크탱크는 대부분 정책 연구를 해요. 기후변화 적응 즉 기후변화로 인해 발생할 수밖에 없는 피해를 어떻게 줄이느냐는 것인데, 주로 취약 계층이 대상입니다. 이를테면 기후변화와 빈곤, 기후변화와 성 이런 겁니다.”
기후변화행동연구소에서 한 연구 가운데 그런 쪽에서 결과물을 낸 게 있습니까.
“지난해에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에너지빈곤층 지원 방안 연구’라는 걸 했습니다. 온실가스 감축으로 가장 문제가 되는 게 요금을 못 내서 단전·단수·단가스 경험이 있는 빈곤층이에요. 외국에서는 오래 전부터 에너지 빈곤이라는 개념을 정립하고 그들을 지원하는 법과 제도를 만들었습니다. 크게 보면 두 가지예요. 연탄과 같이 현물로 에너지를 지원하는 것은 단기적인 대책이고, 장기적으로는 저소득층 주거지의 열효율을 높여 주는 것이에요. 단열마감재 같은 설비를 해 줘서 에너지를 적게 쓰면서도 겨울을 따듯하게 날 수 있도록 하는 거죠.”
안 소장은 서울대 대학원 재학 시절인 1984년대부터 환경운동을 시작했다. 한국공해문제연구소, 공해추방운동연합의 활동가로서 현장을 누비다가 뒤늦게 독일 유학을 떠났다. 박사 학위를 받은 뒤에는 환경운동가로 복귀해 시민환경연구소 부소장,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 등을 지냈다. 조직적·집단적으로 환경운동에 투신한 1세대 환경운동가 그룹의 대표주자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기후변화행동연구소의 성격이나 활동에도 이런 그의 이력이 그대로 투영돼 있다는 느낌이 든다. 기후변화 ‘문제’가 아니라 ‘행동’이 들어간 이름부터가 그렇다. 수요도 많고 빛도 나는 정부·지방자치단체·기업의 관심사보다 반공해운동 시절부터 중심에 두었던 피해자 문제를 연구의 주된 주제로 삼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연구소의 홈페이지(climateaction.tis tory.com)를 보니까 외국의 기후변화와 관련한 신간 보고서를 많이 소개하고 있더군요.
“기후변화 범위가 아주 넓은 문제잖아요. 전 세계에서 보고서가 쏟아져 나오는데 연구자들한테만 소통이 되고 일반 국민한테는 잘 안 가거든요. 그걸 우리가 번역해 쉽게 풀고 요약해서 홈페이지에 올리고 ‘뉴스레터’로도 배포하고 있어요. 앞으로는 세계적으로 제기되는 기후변화 회의론을 20개 정도 뽑아서 그 주장의 문제점을 담은 브로슈어도 만들려고 해요.”
기후변화에 대한 대중의 이해를 높이는 작업도 연구소가 말하는 ‘행동’의 한 가지라는 얘기다. ‘녹색 거짓말’ 보고서도 연구소의 홈페이지에 ‘목재 바이오에너지는 화석연료의 대안인가?’라는 제목으로 올라 있다.
지난해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유엔기후변화협약 제15차 당사국총회(COP15) 이후 국내에서 기후변화 이슈가 쑥 들어간 상황인데….
“세계적으로도 그래요. 코펜하겐에서 가시적인 성과가 안 나왔고, 올해 멕시코에서 열리는 회의에서도 협상 타결이 어렵다고 많은 사람이 보기 때문에 사실은 김이 좀 빠져 있는 거죠.”
그래서인가. 기후변화 행동과 관련한 인터뷰도 어쩐지 김이 빠지는 느낌이다. 2020년까지 2005년 대비 4% 감축을 국제사회에 약속한 우리나라의 온실가스 중기감축 목표의 실행 방안에 대해 얘기를 더 나눴지만 지난해보다 더 진전된 내용이 별로 없다. 정부가 방안을 내지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를 공론화하지도 않고 있기 때문이다. 4대강 문제로 화제를 옮기는 게 나을 것 같았다.
4대강 사업에 대해서는 여러 측면에서 많은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데, 반대 토론에 많이 참여한 한 사람으로서 어떤 점부터 지적하고 싶습니까.
“두 가지죠. 원래 이름은 4대강 살리기 사업으로 돼 있는데 그게 과연 살리기냐는 게 그 하나예요. 내세우는 목표가 홍수 예방, 가뭄 대비 물 확보, 수질 개선, 수변의 친수 공간 조성, 지역 개발 등 이렇게 다섯 가지 아닙니까. 다 강을 살리는 게 아니라 개발하는 것이고, 딱 하나 수질 개선만 강이 나쁜 상태에 있는 것을 좋게 만들자는 뜻이니까 살리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수질 개선도 4대강 사업에서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의 상당 부분은 그 이전부터 계획돼 있던 것이거든요. 그러니까 4대강 살리기 사업이 아니라 4대강 개발 사업인 거죠.”
살리기로 포장한 개발. 안 소장의 말 대로라면 ‘녹색 거짓말’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4대강 사업의 정당성이 100% 사라지는 것은 아닐 터다. 안 소장이 부언 설명했다.
“대통령이 내세우는 홍수 예방과 물 부족 대비는 기후변화를 연구하고 있는 입장에서 저도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문제는 그 방식이 이른바 국제적인 규범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가고 있다는 거예요. 말하자면 기후변화 적응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게 취약성 평가인데 그걸 하지 않고 전부 다 일괄 준설하고 보를 만들겠다는 것 아닙니까. 다른 목적이 함께 있지 않다면 할 수 없는 방식이에요.”
다른 목적이란 운하를 말하는 것입니까.
“대통령이 임기 중에 운하를 안 한다고 했으니까 운하가 아니라는 게 저쪽 주장이잖아요. 우리가 지금 얘기하는 건 임기 중에 운하를 하겠다는 사업으로 본다는 게 아니라 사업의 성격이 운하를 만들기가 쉽게 기초를 닦는 내용을 많이 담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부가 내세우는 목적 외에 국민에게 정확히 알리지 않는 또 다른 목적이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어떤 목적을 가지고 남을 속이는 일은 ‘검은 거짓말’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큰일이지 않은가. 그런 의심을 받는 것부터가 보통 문제가 아니다. 사실 여부를 떠나 소통 차원에서도 반드시 풀고 넘어가야 할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안 소장이 말하는 두 번째 문제점과도 연결돼 있다.
두 번째로 지적하고 싶은 문제는 무엇입니까.
“속도전의 문제죠. 그저께(6월 23일) 제가 국회에서 발표한 독일의 복원 사례를 들면 이자르 강 8㎞ 구간을 복원하는 데 11년이 걸립니다. 개발이 아니라 복원인 데도 말이죠. 아무리 복원하는 게 좋은 사업이라고 하더라도 생태계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거든요. 공사 자체보다 그 전에 이모저모 살피고 검토하는 데 충분한 시간을 들이는 거죠. 그런데 우리는 2년 남짓한 기간에 691.5㎞, 그것도 큰 강을 다 (개발) 하겠다고 하니… 국제적인 상식이나 전문가적 견해로 봤을 때 이렇게 강을 함부로 다루는 사례가 없습니다.”
안 소장은 독일 에센대에서 하천생태학을 공부했다. 박사 학위 논문 제목이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 하천의 시공간적 변이성과 저서성 무척추동물의 생활사’다. 생태학적 측면으로만 보더라도 “4대강 사업이 장기적으로 생태계를 더 풍요롭게 할 것”이라는 정부의 주장은 그에게 ‘새빨간 거짓말’처럼 들릴 것이다.
전문가적 견해로 봤을 때 4대강 사업이 분명 문제가 있다면 왜 많은 전문가가 침묵하거나 협조한다고 봅니까.
“(길게 한숨을 내쉬고는) 사실 이 정도 사업 같으면 양식 있는 학자들이 이구동성으로 문제점을 지적했어야죠. 아직까지 우리가 선진국 수준의 투명하고 개인의 신념이나 학자적 견해가 보호받을 수 있는 나라가 아니라고 보거든요. 정부가 연구비라는 것을 가지고 학자들의 자유로운 발언을 간접적으로 통제하는 대표적인 경우가 대운하라든가 4대강… 이런 사업이라고 볼 수 있겠죠.”
하천생태학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4대강 사업이 강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합니까.
“용산 참사가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사건이잖아요. 강을 개발하는 것은 거기에 살고 있는 생물의 집을 일거에 철거하는 거예요. 생물은 말을 못 해요. 인간이 집 안에서 단란하게 식사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포클레인이 벽을 치고 들어와 집을 부순다면 얼마나 황당하겠습니까. 현실적으로 인간이 강을 이용하지 않을 수는 없는 일이죠. 하지만 너무 이용 측면만 고려하다가 강이 건강성을 잃고 거꾸로 인간에게 피해를 준 사례가 많아요. 강의 건강성을 지켜 주는 것이 생태계이고, 그것은 강이 원래 간직하고 있는 모습대로 돌려줄 때 지켜지는 것입니다.”
하천 생태계는 회복이 빠르고, 장기적으로는 생태계가 더 다양하고 풍요로워질 것이라는 게 정부의 주장인데….
“사람이 교통사고로 몸을 크게 다쳐도 시간이 지나면 당연히 회복은 되겠죠. 문제는 어떤 모습으로 회복되느냐가 아닙니까. 생물종 다양성 문제도 종이 얼마나 많아졌느냐가 아니라 어떤 종이 많아졌나가 중요해요. 붕어처럼 어디서나 살 수 있는 종들이 우점하게 되면 원래 살던 종은 발을 붙일 수 없는 생태계로 변해요. 하천을 막으면 어떤 변화가 오는지는 학문적으로 워낙 많은 검증이 이뤄졌기 때문에 더 말할 게 없습니다.”
한강 종합 개발이나 청계천 사례에서 보듯이 4대강 사업도 해 놓고 나면 겉으로는 그럴듯해 보이고 잘못됐다고 인식하기까지 상당한 기간이 걸리지 않겠습니까.
“그동안 강이 지니고 있던 자연 경관이 많이 파괴된 상태이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말끔히 정리하고 친수 공간도 만들면 일시적으로 좋아하는 국민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나 정부 주장처럼 100년 뒤에도 좋은 강으로 평가를 받는 건 어렵습니다. 4대강처럼 만들어 놓은 유럽의 강들은 건강성 평가에서 전부 5등급이에요. 가장 나쁜 겁니다.”
4대강 사업을 추진하는 정부나 반대하는 세력이나 이제는 서로 포기할 수 없는 상황이지 않습니까. 대안은 없습니까. 일각에서는 ‘출구전략’을 얘기하기도 합니다만….
“4대강 사업에서 가장 나쁜 것은 보와 준설이잖아요. 보를 그대로 두고 강을 살리기는 어렵기 때문에 이쪽에서 양보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죠. 다만 준설은 하천생태학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굉장히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양쪽이 합의할 여지는 있다고 봐요. 정부가 지금이라도 우기가 왔으니까 공사를 중단하고, 짧은 기간이지만 서로 머리를 맞대고 논의한다면 (해결점을 찾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안 소장이 마지막에 내비친 낙관적인 견해가 문득 어색하게 들렸다. 과연 그럴까. 기자가 아는 한 그는 거짓말을 할 사람이 아니다. 공추련 활동가 시절 공부를 마치고 환경운동으로 복귀하겠다는 약속을 저버리지 않았고, 대학원 시절 공해 피해를 보고 평생 환경운동을 하겠다고 결심한 것을 지금도 지키고 있다. 자연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거짓말은 인간의 몫이다. 그것이 ‘노란 거짓말’이든 ‘파란 거짓말’이든 ‘하얀 거짓말’이든.
(2010.07.13, 위클리경향 883호, 신동호 기자) 원문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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