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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눈에 비친 연구소

연비냐…CO₂냐…`車세제 개편기준` 논란

행안부 "이르면 올해 개정", 車업계 "시장 준비 안 됐다"
업계간 마찰 극심

2011년부터 친환경세로 개편되는 자동차세를 놓고 업계의 의견 대립이 첨예하다. 연비효율과 이산화탄소(CO₂) 배출량, 유종(油種) 등 과세의 기준을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업계별 이해득실이 불가피하게 조정될 수밖에 없어서다.

행정안전부는 지난 4일 한국거래소 국제회의장에서 ‘친환경 자동차세 도입을 위한 공청회’를 열고 세제 개편방안을 논의했다. 자동차를 '사치품'으로 규정한 당시 정부가 1977년 도입한 배기량(cc)에 따른 자동차세 과세기준이 자동차 관련기술 발전과 전세계적인 자동차산업 친환경화에 대응하기에 역부족이라는 지적 때문이다.

이희봉 행정안전부 지방세제관은 "가구당 1대 시대를 넘어 1인당 1대 시대로 접어들고 있는 지금, 자동차세는 지방세 중 가장 민감한 세금"이라며 "친환경세제는 시대의 요청으로, 행안부는 올해 중 개편을 마무리, 개정한 후 내년부터 시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임박한 세제 개편에 있어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새로운 과세기준이다. CO₂배출량과 연비효율 중 어느 것을 기준으로 삼느냐에 따라 자동차업체별로 생산하고 있는 차종과 석유업계의 유종 등 숱한 이해관계들이 얽혀 있기 때문이다. 수입차에 대한 과세기준도 크게 변화하게 된다.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 자동차세 부과액은 3조2930억원, 이 중 승용차에 대한 세금은 3조1490억원이다. 개정안이 시행되는 내년부터 신규 등록하는 승용차는 새 과세기준에 따라 자동차세를 내게 되는데, CO₂배출량이 낮고 연비가 좋은 차는 더 적은, 이와 상반되는 국산이나 수입 대형차는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배기량이 높지만 연비가 좋은 차의 경우, 배기량과 연비가 낮은 차보다 세금을 적게 낼 수도 있다.

현행 자동차세 과세기준은 배기량(cc)에 따라 차등 부과한다. 이 차액이 만만치가 않다. 1000cc 이하 경차는 cc당 100원씩 10만원을 내지만, 1000~1600cc(cc당 140원)부터는 14만~22만4000원, 1600cc~2000cc(cc당 200원)는 32만~40만원을 내야 한다. 2000cc 이상은 일률적으로 cc당 220원의 세액을 부과한다.

이 때문에 세금을 아끼려는 소비자들은 새 차를 살 때 과세구간을 초과하지 않는 차량을 선호해 왔다. 기아차 '모닝'이 배기량을 999cc로 맞추며 높은 판매량을 기록한 게 하나의 사례다.

그러나 내년부터 CO₂배출량이나 연비효율에 따라 세제가 개편되면 자동차업체의 생산개발 계획은 적지 않은 영향을 받게 된다. 배기량과 상관없이 이 두 기준에 따른 세금 부과액이 낮은 차량일수록 소비자 수요를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개편방안 조사를 맡고 있는 한국조세연구원은 CO₂배출량에 따라 과세를 하게 되면 정부의 녹색성장 정책 구현에 직접적인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지금까지 업계가 연비 규제에 익숙해 있고, 도입 초기 일반인들의 이해가 어렵다는 점을 단점으로 보고 있다. 반면 연비 기준에 따른 과세는 업계의 규제 순응이 쉽지만, '친환경' 목표 실현에는 간접적인 영향만을 준다는 지적이 나온다는 설명이다.

업계의 반응은 크게 엇갈리고 있다. 자동차 생산계획에 세제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업체는 물론, 수치상의 연비가 낮은 액화석유가스(LPG) 유통업체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전기차나 하이브리드카 등의 과세기준 설정과, 연비에 초점을 두고 친환경규제를 강화한 미국과의 통상관계도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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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토의자로 참가한 윤원철 한양대 교수는 "소비자 입장에서 과세의 적정성을 따져야 한다"면서 "소비자의 이해도, 미국을 주 대상으로 삼고 있는 자동차 수출구조 등을 봤을 때 연비기준의 규제가 타당하다"고 말했다. 안병옥 기후변화행동연구소장은 이에 "온실가스를 줄이는 게 정책목표인만큼 당연히 CO₂를 기준으로 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기계산업팀장은 "업계는 준비가 안 됐는데 규제만 앞서가면 부정적인 효과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자칫 잘못하면 일본산 하이브리드카 등 수입차 좋은 일만 생길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 팀장은 "한국은 미국, EU(유럽연합)와 자유무역협정(FTA)를 동시에 진행하고 있는 만큼, 국가별 차량 보급현황도 잘 살펴봐야 한다"면서 "현재는 연비를 기준으로 삼는 게 합리적"이라고 강조했다.

김성익 자동차공업협회 상무는 국내 자동차산업 위축을 우려했다. 김 상무는 "자동차는 국가전략 산업인데, 세제 개편에 따라 수요 추이가 정해질 수 있다"며 "일부 업체는 개편에 따라 불리해질 수 있어 전략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놨다. 과세기준에 대해서는 "CO₂배출량과 연비 두 가지를 혼합하는 방법도 찾아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세제개편이 시기상조라는 의견도 나왔다. 류금렬 조세심판원 상임심판관은 "갑작스런 개편으로 세부담이 늘어나는 계층이 있으면 조세저항의 원인이 되기 때문에 현행 세제를 당분간 유지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유종에 따른 업계간 대립은 풀이가 쉽지 않다. 이원철 대한석유협회 본부장은 "소비자들이 차를 살 때도 연비를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만큼 연비를 기준으로 삼는 게 정책 수행에 효과적"이라고 전했다.

이에 강정석 대한LPG협회 본부장은 "기체인 LPG의 특성상 리터당 연비가 불리할 수밖에 없다"며 "연비기준은 에너지의 기본적인 속성을 무시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행안부는 향후 포럼과 공청회 등 다양한 의견수렴 절차를 걸쳐 정부안을 확정짓겠다는 방침이지만, 이르면 수개월 앞으로 다가온 30여년만의 자동차세제 개편은 업계의 대립과 논란 속 지난한 산고(産苦)를 겪고 있다.

한경닷컴 이진석 기자 gene@hankyung.com


(2010.05.06, 한국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