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노조의 요청으로 ‘기후변화와 재생가능에너지’를 주제로 강연을 한 적이 있다. 강연이 끝난 후 참석자들이 가장 관심있게 질문했던 것이 재생가능에너지 보급에 관한 국내 성공 사례에 관한 것이었다. 강연에서 다루었던 주요 내용 중의 하나가 정부가 아닌 지역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재생가능에너지 보급에 성공한 외국 사례들이어서 이에 대응할 만한 국내 사례를 듣고자 했다. 그런데, 당시 내가 참석자들에게 설명할 수 있던 것이라고는 환경 운동과 에너지 운동을 하는 시민단체들에 의한 시민발전소 건립, 산청 마을의 실험 정도 뿐이었다. 사실, 유럽에서의 경우처럼 지역 주민들이 주도가 되어 지역 공동체가 필요로 하는 에너지를 재생가능에너지로 대체하고, 이를 통해 지역 일자리를 창출한 사례의 경우가 아직 국내에서 보고되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강원도의 마을 하나가 국내에서도 이런 지역 에너지 실험이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해주었다. 인제군 남면 남전리 마을 사람들이 바로 이 실험을 주도한 이들이다. 다른 마을들에서는 마을 발전기금으로 농산물 창고, 토산품 판매장 등을 짓고 있을 때, 이 마을에서는 발전기금과 은행 융자를 합해서 300kW의 태양광 발전기를 세웠다. 그리고 이 발전기에서 나오는 수익을 관리하고 배분하기 위해 ‘남전 1리 주민협의회영농조합법인’도 세웠다. 발전기에서 나오는 전기 판매 수익은 대출금 상환과 마을 일을 돕는 사람에게 인건비로 지급한다는 원칙도 마련하였다. 정부의 발전차액지원정책을 잘 활용하여, 남전리 마을은 이제 에너지 농사꾼이 되어 마을에 필요한 소득을 벌어들이고, 이를 마을 사람들에게 분배할 수 있게 되었다.
태양광 발전기는 마을에 소득원 역할만 하는 것은 아니다. 법인의 설립, 발전기 수익을 둘러싸고 주민들 간 이견을 조종하느라 마을 회관은 어느 때보다 소란스러웠을 것이다. 즉, 발전기가 들어서자 자연스럽게 주민들 간 왕래가 잦아지게 되며, 마을은 활기를 띨 수 있었다. 마을 공동체가 살아난 것이다. 마을 발전기금이 들어가다 보니, 마을 주민들이 이 발전기에 보내는 관심 또한 남다르다. 태양광 10만호 정부 보조 사업으로 지어진 태양광 발전기가 고장이 나도 지역 주민의 외면 속에 방치되고 있다고 한다. 자신이 투자한 대상이 아니니 관심이 낮을 수 밖에 없다. 남전리의 발전기는 이런 운명을 맞지는 않을 것이다.
유럽 등지에서는 최근 이런 형태의 지역 주민이 소유하고 관리하는 지역 기반 재생가능에너지 시스템을 확산하기 위한 정책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독일에서는 이런 시스템 정착에 성공한 지역 사례들의 성공 요인들을 정리해서 가이드북을 만들어 지자체에 배포하기도 하였다. 아울러 이런 성공을 가로막는 법적, 제도적 장애를 개선하는데 노력을 기울이고 있기도 하다. 이런 정책적 지원의 배경에는 재생가능에너지 확산에 지역 주민의 참여가 절대적이라는 지난 시기의 경험, 그리고 지역 기반 재생가능에너지 시스템이 지역 경제 및 지역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가능하게 한다는 인식이 있다. 지역 주민 공동 소유의 에너지 설비는 지역 주민 간의 소통 기회를 높여줌은 물론, 지역 경제 활성화를 통해 지역의 발전을 결과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100% 재생가능에너지 자립 마을을 구축한 유럽의 마을들은 어느 곳보다 마을 공동체가 살아있는 곳이었다. 재생가능에너지는 화석 연료를 대신하여 기후 변화 위기를 막아줄 뿐만 아니라 지역 공동체에도 생명을 불어 넣어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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