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철(월간 함께사는길 주간)
선풍기, 라디오, 유선 전화기, 세탁기, 전기밥솥, 컬러TV, 컴퓨터, 자동차, 에어컨, 3G휴대전화, 전기오븐레인지, 게임 아이템…. 순서는 틀릴지 모르나 생활필수품으로 우리 사회가 소유를 열망한 품목들의 진화사는 이러할 것이다. 이른바 머스트 해브 아이템(Must have item)들인 셈인데 갖고 싶었던 명품이나 아이템을 얻거나 요행수로 구입하면 ‘득템(得 item)’했다고 미니홈피에 자랑하는 이들도 많은 모양이다.
이런 소유의 현상학은 1950년대 미국 경제가 황금시대를 열고 자국의 소비주의 문화를 이른바 세계표준으로 수출하면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소비주의가 견인하는 경제체제의 관점에서 보면 이 가공할 양식은 오늘날 경제개발 후발국들의 장밋빛 환상을 자양분 삼아 더욱 맹위를 떨치고 있다. 해방 이후 가장 열정적으로 미국을 닮고자 한 나라로서, 그리고 경제 선진국 진입 목전의 사회로서 한국은 이제 중간점검이 필요하다. 점검의 핵심은 이 한 질문이다. ‘더 많은 상품을 갖고자 더 많이 일하고 날마다 전쟁 같은 일상을 치러야 하는 삶이 진정 행복한가?’
소비에 필요한 돈을 벌기 위해 사람들은 점점 더 자기를 가혹하게 학대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현재 암, 심혈관질환, 폐질환, 당뇨병, 차사고로 세계인의 절반이 사망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그 죽음은 거의 운동 부족과 부적절한 식습관, 맛과 편리만 쫓는 생활 등 잘못된 소비 선택의 탓이라는 것이다. 소비주의라는 경제적 양식의 문제를 빼고 단지 개인 선택의 문제라니 선뜻 수긍할 수 없다. 그러나 많은 이들의 동조 없이 사회적 양식이 일반화됐을 리 없으니 우리가 포기했거나 무관심했던 정치와 경제, 사회 등 이른바 공동체의 구조와 이념에 관한 우리들의 무비판적인 선택 탓이 맞을 듯도 하다.
지금 한국사회의 삶의 방식에 관한 가장 시사적인 이슈들은 4대강사업, 새만금사업, 세종시 이전 논란 등이다. 모두 경제를 살린다는 미명 아래 벌어지는, 자연 또는 토지 개발의 열매를 따먹으려는 사업이거나 그것을 잃을까 두려워 빚어진 논란이다. 다시 물어보자. 부동산 가격을 부풀리고 지키려는 욕망에 투신해 번 돈으로 명품 소비에 올인하고 소비 유지를 위해 부의 세습, 교육의 세습을 기획하는 우리 사회는 행복한 사회인가?
소비주의와 문화를 다룬 올해 『지구환경보고서』에 지구촌의 미래에 관한 음울한 설문분석 결과가 나온다. 1980년 이래 미국 대학 1학년생들 중 삶의 목표를 ‘부의 추구’라고 답한 이들이 ‘삶의 의미’라 답한 이들보다 많았고 이 현상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동구 이행경제체제의 12개 국가에서는 설문 답변자의 3분의 2가 ‘부의 추구’가 더 중요하다고 답했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초등학교 아이들이 장래 희망란에 구체적 직업이나 역할이 아닌 ‘부자’라고 적는 경우가 이미 뉴스거리조차 아닌 마당이다.
인생 제1의 목적이 부의 추구가 된 세계, 상품 소비로밖에 행복을 확인할 길 없어 ‘머스트 해브 아이템’의 숫자를 끝없이 늘려가는 세계, 윤회하는 욕망의 세계다. 그 뒤안길에서 강과 갯벌, 자연이 매장된다. 자연을 유린하여 이득을 챙기려는 ‘득템의 이기심’이 불러온 긴긴 희생양들의 목록에서 우리만은 빠질 수 있다고 믿는 게 환상이라는 자각이 우리 안에서 발효될 때도 되지 않았을까? 자문하면 생각보다 쉽게 답할 수 있을 듯도 하다. ‘우리는 행복한가?’
※ 이 글은 월간 함께사는길 2010년 3월호에 실렸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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