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협상이 성공하기 위한 7가지 조건
다음 달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리는 유엔기후변화협약당사국총회(COP15)는, 인류가 기후변화라는 사상 초유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를 다루는 시험대이다. 하지만 코펜하겐에서 교토의정서를 대신할 새로운 협약 체결은 불가능하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파국을 피하기 위해서는 늦어도 내년 상반기까지는 합의를 반드시 이끌어내야 한다.
기후변화협상이 성공하기 위한 조건은 무엇일까? 가장 핵심적인 7가지를 선정해 소개한다.
1. 선진국의 역사적 책임에 상응하는 과감한 감축
온실가스 감축에는 형평성, 책임, 능력이라는 세 가지 기준이 적용된다. 이 기준에 따르면, 선진국이 202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대비 40%까지 감축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는 기후변화협약의 기본원칙인 ‘공통의 차별화된 책임의 원칙’에 부합하는 것이기도 하다.
유엔기후변화협약에서 부속서 II 국가의 지위를 갖고 있는 23개 국가의 인구는 전 세계 인구의 14%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1850년 이래 이들 국가들의 온실가스 누적배출량은 전 세계 누적배출총량의 60% 이상을 차지하며, 오늘날 전 세계 배출량의 약 40%가량을 점유하고 있다.
올해 12월 코펜하겐 회의를 앞두고 지금까지 선진국들이 발표한 계획을 종합해보면, 1990년 대비 11-15% 감축수준에 그치고 있다. 이는 과학자들이 제시하는 25~40% 감축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는 내용이다. 기후변화라는 전 지구적인 환경위기에 대한 일차적인 책임은 탄소배출을 통해 경제성장의 과실을 누려왔던 선진국들에게 있다. 역사적 책임에 상응하는 선진국들의 과감한 온실가스 감축이야말로 인류가 지구상에 존속하기 위한 첫 번째 전제조건이다.
2. 주요 개발도상국의 적극적인 감축 노력
국제에너지기구는 2005년부터 2030년까지 개발도상국들의 에너지 수요가 75%까지 높아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는 기온상승을 억제하려면 개발도상국의 배출증가량을 줄이는 노력이 반드시 병행되어야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특히 중국, 인도 등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은 적지만 배출총량이 많은 개발도상국들의 감축노력이 절실하다. 이들 국가에서 온실가스 배출량이 지속적으로 증가한다면, 선진국들이 과감한 감축에 나선다 하더라도 기온상승 억제라는 인류 공동의 목표 달성은 수포로 돌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유럽연합은 2020년까지 개발도상국이 배출전망치(BAU) 대비 15~30퍼센트까지 감축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왔다. 우리나라와 멕시코 등 OECD 회원국이면서도 온실가스 감축의무에서 제외되어 왔던 국가들은, 의무감축국 편입 여부와 무관하게 여타 개발도상국들에 비해 훨씬 강력한 감축목표를 제시해야 한다.
3. 재생가능에너지 확대를 위한 담대한 계획과 실행
에너지 전환에 가장 적극적인 나라로는 독일을 들 수 있다. 독일은 지난 2000년「재생가능에너지법」을 제정하면서 이미 2006년에 이산화탄소 배출을 1990년 대비 18%나 줄일 수 있었다. 2010년까지 전체 전력 중 재생가능에너지 비중을 12%까지 높인다는 목표까지 세워둔 상태다. 하지만 2007년 현재 재생가능에너지의 비중은 14%를 차지해 목표량을 2%가량 초과달성한 것으로 평가된다. 유럽연합의 목표는 2020년까지 재생가능에너지 보급 비중을 전체에너지의 20%로 높인다는 것이다.
재생가능에너지의 확대는 유럽뿐만 아니라 미국, 중국, 일본, 브라질 등에서도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재생가능에너지 보급률은 고작 1% 수준에 불과하며, 2030년에도 11%에 불과한 수준으로 확대될 계획이다. 에너지를 거의 전량 수입해야하는 처지를 고려한다면, 재생가능에너지 확대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정치적 의지가 요구된다.
4. 개발도상국에 대한 재정지원과 기술이전
기후변화는 먼 미래에 닥칠 위험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인 생존의 위기다. 특히 아프리카, 남아시아, 태평양 군소도서국가 등 이미 피해가 가시화되고 있는 나라들에는 기후변화 대응에 필요한 경제적인 능력과 기술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들에 대한 재정지원과 기술이전이 지체될 경우 수많은 기후난민이 발생해 그 부담은 결국 선진국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지난 9월 유럽연합은 선진국들이 매년 330억 달러에서 740억 달러까지 개발도상국에 제공해야 한다며, 유럽연합은 30억 달러에서 220억 달러까지 책임지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오는 12월 코펜하겐에서도 개발도상국에 대한 재정지원과 기술이전 문제는 협상의 성패를 가르는 중요한 열쇠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G77 등 중국을 필두로 한 개발도상국들은, 새로운 기후변화협약 성공의 전제조건으로 재정지원과 기술이전에 대한 선진국들의 책임 있는 태도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5. 탄소배출권 거래시장에 대한 감독과 감시 강화
하지만 청정개발체제(CDM) 등 국제시장에서 이루어지는 배출권 거래는 충분한 감독과 감시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온실가스 다배출자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수단으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 또한 청정개발체제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개발도상국의 전통문화를 파괴하고 토착민들의 인권을 침해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따라서 이들 감축수단에 대한 국제기구와 NGO의 감시기능을 강화하고 해외 크레딧의 감축분 인정범위를 보다 엄격하게 제한할 필요가 있다.
6. 기술주의에 경도된 온실가스 감축정책에 대한 경계
한편, 선진국들의 온실가스 감축기술 개발이 새로운 기술제국주의로 이어질 위험에 대해서도 경계할 필요가 있다. 온실가스를 줄인다는 명분으로 선진국들이 기술을 앞세워 막대한 이득을 취하려 든다면, 세계는 빠른 속도로 갈등과 국지적 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될 것이다.
7. 기후정의와 형평성의 원칙 적용
한 사회 내에서 기후변화의 최대 피해자는 사회경제적 약자들이다. 여기에는 제3세계 국가의 대다수 국민들뿐만 아니라 선진국의 저소득층, 노령자, 영유아, 임산부 등이 해당된다. 온실가스 감축노력과 석유자원의 고갈은 가스, 전기 등 에너지가격의 급속한 상승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이 과정에서 사회경제적 약자들은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한 최소한의 에너지도 공급받지 못하고 심지어는 조상대대로 물려받은 자신의 삶터를 상실하게 될지도 모른다. 온실가스 감축과 기후변화 적응에 있어서는 ‘기후정의의 원칙’이 확고하게 지켜져야 한다(기후변화행동연구소 안병옥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