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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나눔

생매장 구제역 가축들의 역습

[시론] 생매장 구제역 가축들의 역습

 

안병옥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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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간 생명들의 역습이 시작된 것인가. 구덩이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치던 돼지들의 비명이 이제 비수로 돌아와 우릴 겨누고 있는 느낌이다. 생매장 당한 가축들의 피가 넘쳐 길가로 흘러나오는가 하면, 주민들이 마셔오던 지하수가 붉게 물드는 곳까지 발견됐다. 하지만 지금은 시작에 불과하다. 재앙이란 놈은 봄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녹아내린 땅에 비마저 쏟아지면 어디서 어떤 일이 발생할지 모른다.

비닐 두 겹만으로 가축 사체에서 흘러나오는 침출수를 막는다는 건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묻기에 급급한 나머지 매몰 장소선정이나 사후관리를 엉망으로 했기 때문이다. 워낙 서두르다보니 주먹구구식 매몰처리가 불가피했다는 변명도 들린다. 하지만 아무리 급해도 이럴 수는 없다. 낙동강 상류지역에서만 매몰지 89곳 중 절반이 넘는 45곳에서 식수원 오염 우려가 큰 것으로 드러났다. 대부분 경사가 급해 흙이 유실될 위험이 높거나 하천과 가까운 곳들이라니 가장 피해야할 장소를 골라 수천마리씩 묻은 셈이다. 4000곳이 넘는 매몰지를 전수조사해보면 부실 건수는 부지기수일 것으로 짐작된다.

정부가 마련한 긴급행동지침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점도 충격적이다. 이 지침에 따르면, 관할 시·군은 가축을 묻은 날로부터 최소 15일은 주 2~3회, 이후 6개월은 매달 1회, 3년까지는 분기마다 매몰지 상황을 점검해 기록하고 관리해야 한다. 가축 사체가 썩으면서 나오는 가스 때문에 매몰지 내부 압력이 높아져 침출수가 유출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후점검과 기록을 제대로 한 곳은 많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본격적인 살처분이 시작된 지 한 달이 지나도록 어떤 매몰지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파악조차 안 되고 있었다는 얘기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환경부의 늑장대응이다. 며칠 전 환경부는 전국의 모든 매몰지에 대해 긴급 실태조사를 벌이고 주변과 상수원 상류에 있는 관정의 수질 모니터링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늦어도 너무 늦었다. 첫 살처분이 이루어졌던 작년 11월 말부터 시작했어야할 일들이다. 초기 관리에 실패해 침출수가 새면 구제역 바이러스의 확산 가능성이 더 커진다. 환경부는 매립지 침출수에 관한 경험과 노하우가 가장 많은 부서다. 매몰 장소선정과 사후관리가 잘못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랐을 리 없다. 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구제역 대응에서 환경부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가축이든 사람이든 땅 속에 묻히는 순간 위험한 오염원으로 바뀐다. 동물 사체에서 흘러나오는 침출수는 석회, 살균제, 진정제, 병원균이 가득한 독성물질 덩어리나 마찬가지다. 암모늄이나 칼륨 농도는 수천PPM(mg/l), 화학적 산소요구량(COD)도 일반 하수보다 100배 이상 높다. 우리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국가는 2001년 구제역 확산으로 가축 250만마리가량을 땅속에 묻었던 영국이다. 공학적으로 안전성이 검증된 매몰지를 선택했음에도 그 후과는 혹독한 것이었다. 석회와 살균제 성분을 함유한 침출수가 200건의 수질오염사고를 일으켜 물고기 수천마리가 떼죽음 당하기도 했다.

구제역 침출수 재앙을 막기 위해서는 매몰지 현황에 대한 정확한 파악이 급선무다. 그런 점에서 환경부가 다음 달까지 전수조사를 하겠다는 건 늦었지만 당연한 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또다시 시간에 쫓겨 대충해서는 안 된다. 침출수가 문제가 된 영국 웨일스 에핀트에서는 묻었던 가축 사체를 다시 파내 소각하기까지 했다. 생명의 역습이 생태계를 뿌리째 무너뜨릴 것인지는 지금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다.

(2011.02.09,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