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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눈에 비친 연구소

[기고] 탄소배출권거래제, 늦출 이유 없다

녹색성장위원회가 탄소배출권거래제 법안을 입법 예고하면서 찬반 논란이 일고 있다. 배출권거래제는 기업들에 온실가스 배출한도를 정해주고 배출량 초과분과 감축분 거래를 허용하는 제도다. 이 제도의 도입에 대해 산업계는 시기상조라며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최경환 지경부 장관은 한 술 더 떠 국익 차원에서 제도 도입 논의 자체를 그만둬야 한다고까지 말했다. 이런저런 핑계로 온실가스 감축부담을 피해가려는 지경부와 산업계의 시도는 사실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들의 태도는 국제사회에서 기후변화 논의가 한창이던 십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게 없다.


지경부와 산업계의 주장은 두 가지로 압축된다. 먼저 온실가스 목표관리제에 배출권거래제를 추가로 도입하면 불합리한 이중규제를 받게 돼 국제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주장은 사실과 거리가 멀다. 두 제도는 적용대상과 도입시기부터가 다르다. 2013년부터 배출권거래제가 도입되면 대규모 사업장들은 더 이상 목표관리제 적용을 받지 않게 된다. 이때부터 목표관리제에 남게 되는 것은 소규모 사업장들뿐이다. 국무위원인 지경부 장관은 말할 것도 없고 산업계가 이 사실을 모를 리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배출권거래제를 필사적으로 반대하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그 답은 곧 시행될 온실가스 목표관리제의 허술함에 있다. 이 제도에서는 정부가 할당량을 기업과 협의해 정해야 한다. 기업이 온실가스 감축에 난색을 표하면 이를 강제할 방법이 없다는 뜻이다. 솜방망이처럼 가벼운 벌칙규정도 문제다. 기업들은 감축목표를 달성하지 않아도 1000만원 이내의 과태료를 물면 그만이다. 배출권거래제는 기업마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할당받는다는 점은 같다. 하지만 할당량보다 온실가스를 더 내뿜는 기업은 초과한 양만큼 돈을 들여 배출권을 사야 한다.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기업일수록 이 제도의 도입에 반대하는 이유다.

사실 겉으로만 보면 직접규제에 가까운 목표관리제가 시장에서 배출권을 사고파는 배출권거래제보다 부작용이 적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건 목표관리제가 제대로 설계되었을 경우에 한해서다. 배출권거래제 도입에 반대하는 이들은 다음과 같은 질문에 답해야 한다. 목표관리제에서 배출량을 국가 감축목표에 맞게 보다 엄격하게 할당하고 벌칙규정을 대폭 강화한다면 받아들이겠는가? 이도 저도 싫다면 결국 법률로 정한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헌신짝처럼 버리자는 얘기인가?

반대 측의 두 번째 주장은 미국이나 일본도 미루는 일을 우리가 왜 먼저 나서냐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미국과 일본이 최근 국제사회에서 얼마나 많은 비난을 받고 있는지 모르고 하는 소리다. 코펜하겐에서도 그랬지만 최근 멕시코 칸쿤의 기후변화협상에서도 미국과 일본의 영향력은 급속도로 약화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책임을 회피하는 국가가 국제사회에서 리더십을 상실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국제사회의 신뢰를 잃게 되면 장기적으로는 기업 활동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최근 눈에 띄는 것은 부쩍 커진 중국의 영향력이다. 중국은 배출권거래제 도입을 검토하는 등 온실가스 감축에 가장 적극적인 개발도상국이라는 인상을 심는데 성공했다.

이윤추구가 목적인 기업들에 기후변화의 종착역은 인류문명의 파국이라는 도덕설교를 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지금 온실가스를 줄이지 않으면 나중에 져야할 부담은 더 커진다. 어차피 가야할 길이라면 소모적인 논쟁으로 시간을 허비하지 않는 것이 현명한 태도다. <안병옥|기후변화행동연구소 소장>(2010년 12월 14일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