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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과 이슈

칸쿤 기후변화협상 무엇을 남겼나?

“죽어가던 환자의 생명은 구했지만 완치가 가능한지는 의문이다.” 지난 12월 10일 막을 내린 칸쿤 기후변화협상 결과를 요약하면 이렇다. 칸쿤합의에 는 빛과 그림자가 동시에 존재한다. 그 내용을 분야 별로 요약해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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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N Climate Talks/Flickr


온실가스 감축

코펜하겐 협약이라는 불완전한 틀 속에서 이루어진 선진국들의 온실가스 감축공약은 유엔의 공식 절차와는 무관한 것이었다. 칸쿤에서는 각 나라의 감축공약이 유엔의 공식문서로 남겨져 한층 더 구속력이 높아진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법적 구속력을 가지는 합의까지는 가야할 길이 멀다. 온실가스 감축 책임문제를 둘러싸고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입장이 첨예하게 부딪히고 있기 때문이다. 각 나라들이 제시한 온실가스 감축공약도 목표치와는 거리가 멀다. 지금까지 제시된 감축목표로는 지구 기온이 산업화 이전 보다 3.2℃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2℃ 이내에서 억제해야 한다는 과학자들의 견해와는 매우 큰 격차가 있는 셈이다. 이는 내년 말 남아공 더반에서 열릴 예정인 COP17 역시 매우 험난할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다.

교토의정서

2012년 말 효력이 끝나는 교토의정서 연장 문제는 칸쿤 회의 내내 뜨거운 감자였다. 일본을 필두로 캐나다와 러시아가 “미국과 중국 등이 동참하지 않는 한 교토의정서 연장에는 어떤 경우에도 찬성하지 않을 것”이라며 개발도상국들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결국 교토의정서 연장 문제 역시 내년 협상과제로 미뤄지게 됐다.

녹색기후기금

칸쿤합의가 거둔 성과가 있다면 멕시코가 처음 제안했던 녹색기후기금 조성에 의견 접근이 이루어진 것이다. 개발도상국의 기후변화 대응을 돕기 위해 선진국들이 내놓기로 한 이 기금의 규모는 2012년까지 매년 100억 달러(약 12조원), 2013년부터 2020년까지는 매년 1000억 달러(약 120조원)다. 기금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이 동수로 참여하는 24명의 이사회가 관리하며, 출범 후 3년 동안은 세계은행이 신탁 방식으로 실무 운영을 맡게 된다.

칸쿤합의에 따르면 재원은 공공기금과 민간기금 모두 활용이 가능하다. 이른바 ‘혁신적인 분야의 재원’을 끌어올 수도 있다. 이 재원은 탄소세 또는 탄소배출권거래제 도입을 통해 조성되는 기금(수수료, 유상할당 등)을 뜻한다.

하지만 재원의 성격 문제는 여전히 논란의 불씨로 남아 있다. 개발도상국들은 선진국들이 기왕에 제공하던 공적개발기금(ODA)을 이름만 바꿔 녹색기후기금으로 재포장하려 한다고 주장해왔다. 선진국들이 기금 조성내역을 스스로 투명하게 밝히지 않는 한, 기금의 ‘이중 계상(double counting)'을 둘러싼 갈등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녹색기후기금의 사용처 문제도 논란거리다. 개발도상국 중에서도 가난한 국가들은 기금의 60% 이상을 ‘기후변화 적응’에 써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기금이 온실가스 감축 등 기후변화 완화 쪽으로 쏠리게 되면, 온실가스를 거의 배출하지 않으면서도 당장 기후변화 피해를 입고 있는 나라들이 기금 혜택을 받을 가능성은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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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N Climate Talks/Flickr


기후변화 적응

칸쿤합의는 기후변화 적응을 지원하기 위한 가이드라인과 함께 ‘칸쿤 적응체제(Cancun Adaptation Framework)'의 도입에 합의했다. 기후변화 적응을 지방정부 수준까지 지원할 수 있도록 적응위원회를 구성한다는 것이 이 체제의 뼈대다. 하지만 이 위원회의 활동을 재정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방안은 논의되지 않았다.

기술이전

기후변화 대응을 돕기 위한 기술이전은 개발도상국들이 오래 전부터 요구해왔던 문제다. 칸쿤합의는 지역 기술개발의 허브 구실을 담당하게 될 기후기술센터를 설립하고 기술실행위원회의 관리·감독을 받도록 했다. 기술이전은 직접적인 기술 제공보다는 각종 프로젝트와 혁신을 돕기 위해 전 세계를 연결하는 네트워크 형태로 이루어지게 된다. 하지만 기후기술센터의 운영에 필요한 재원과 기술이전 시기 및 대상 등은 아직 분명하게 정해지지 않았다.

산림전용 방지(REDD+)

산림전용은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15%가량을 차지한다. REDD+는 개발도상국의 산림전용 방지와 산림보호를 선진국들이 재정적으로 보상하는 체제다. 특히 브라질, 콩고, 인도네시아 등이 잠재적인 수혜국가로 분류되고 있다.

칸쿤에서는 REDD+의 시행에 대해 원칙적인 합의가 이루어졌지만, 시행 시기 및 재정 지원과 관리 감독 문제는 합의문에 담기지 못했다. 선진국들이 재정 지원의 대가로 국내 온실가스 감축을 상쇄(offset)할 수 있는지의 여부 또한 불투명하다.

‘산림’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도 논란의 불씨가 될 전망이다. 유엔의 ‘산림’ 정의에는 열대우림부터 팜유 플랜테이션까지가 모두 포함된다. 팜유 플랜테이션의 조성은 인도네시아 등에서 산림 파괴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이처럼 ‘산림’에 대한 정의가 모호할 경우 REDD+에 대한 투자는 산림파괴를 조장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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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N Climate Talks/Flickr


측정·보고·검증(MRV)

각 국가들의 감축 현황을 측정·보고·검증(MRV)하는 시스템에 합의했다는 점도 칸쿤회가 거둔 성과의 하나다. 코펜하겐에서는 온실가스 감축활동을 측정·보고·검증(MRV)‘해야한다는 미국의 주장에 대해 중국이 ’주권침해‘라며 강력하게 반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측정·보고·검증(MRV)의 주체가 해당 국가인지 아니면 유엔이나 제3의 기관인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기후변화행동연구소 안병옥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