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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눈에 비친 연구소

태풍·홍수에 무력한 ‘토건’ 대책 언제까지?

태풍과 호우 피해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기상 이변 탓도 있지만, 수해 예방과 복구 방법이 1970년대식 토건 사고방식이기 때문이다. 선진국은 우리와 달리 재해 지역의 주민 이주 같은 방식을 택하고 있다.


안병옥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소장)


폭탄주, 세금 폭탄….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난히 폭탄이라는 낱말을 즐겨 쓴다. 이번에는 물폭탄이다. 일주일 전 인천 송도에 220mm가 넘는 폭우가 쏟아졌을 때 한 신문의 기사 제목은 “중부 ‘물폭탄’… 태풍도 올라온다”였다. 과격한 언사라면 외국인들도 뒤지지 않는다. “날씨가 미쳤다”라는 서양 언론들의 표현이 이제는 진부하게 들릴 정도다.

사실 지구촌 전역이 극심한 기상이변에 시달리고 있다. 폭염과 집중호우, 산불이 잇따르면서 재산 피해와 인명 손실이 기하급수로 늘고 있다. 지난 7월 말~8월 초 2주일 동안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를 강타한 폭염은 기온 관측 기록을 다섯 차례나 갈아치울 정도였다. 39℃를 웃도는 폭염이 며칠 지속되는 현상은 모스크바의 8월 평균기온이 22℃라는 점에 비춰보면 매우 이례적이다. 파키스탄은 7월29일부터 시작된 폭우로 80년 만에 최악의 홍수 피해를 입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무엇보다 여름철 강우 패턴이 변하고 있다는 게 문제다. 과거에는 비가 7월 장마철에 집중적으로 쏟아졌지만, 1980년을 기점으로 8월 강우량이 25%나 증가했다. 같은 양의 비가 오더라도 장마가 끝난 여름 후반부로 갈수록 피해가 커진다. 이미 내린 비로 약해진 지반에 추가로 비가 내리면 산사태나 시설물 붕괴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최근의 강우 패턴은 짧은 시간에 쏟아지는 국지성 집중호우가 잦아졌다는 특징도 있다. 2002년 태풍 루사가 한반도를 강타했을 때 강릉에서는 하루에 800mm 넘는 비가 한꺼번에 쏟아지기도 했다.


2000년대 들어 태풍 사망자 비율 ‘껑충’

지난 20년간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인명 손실과 재산 피해를 입힌 기상재해는 단연 태풍과 홍수이다. 하지만 시기별로 보면 둘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1990년대에는 홍수로 목숨을 잃은 사람이 전체 기상재해 사망자의 80%를 웃돌았다. 그렇지만 2000년대에 들어서는 태풍 사망자 비율이 54%로 홍수 인명 피해 비율의 2.5배나 된다. 공공시설 피해액도 유사하다. 1999~2008년 공공시설 피해 규모는 태풍 9조5959억원, 호우 4조3518억원으로 태풍 피해가 호우 피해보다 2배 이상 많았다. 지역별로 보면 인명과 재산을 가릴 것 없이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지역은 강원도로 나타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폭풍을 동반하는 큰 비는 공포와 원망의 대상이었다. 조지 스튜어트는 <폭풍우>라는 소설에서 “건초 수확기의 뇌우는 내각을 갈아치우고 기온이 약간만 변해도 왕좌가 흔들린다”라고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수해는 오래 전부터 가뭄과 함께 국운을 좌우하는 천기 변화로 받아들였다. 재해가 왕의 부덕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보아 근신하고자 했던 피정전(避正殿)이나, 창고를 열어 굶주린 백성들에게 곡식을 나누어 주던 진휼(賑恤)은 변화무쌍한 날씨에 잘 적응하는 일이 국가의 중대사였음을 보여준다.

오늘날에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2002년 태풍 루사와 2003년 태풍 매미는 각각 수백명의 인명 피해와 수조원의 재산 피해를 낳았다. 이후 2006년 애위니아 태풍을 제외하고는 상대적으로 피해 규모가 작았지만, 태풍과 호우 피해를 줄이는 일이 시급하다는 점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문제는 그 방향이 올바르냐이다. 매년 수해 예방과 복구 명목으로 강 정비에 수조원에 달하는 돈을 쏟아 부었지만 피해는 줄지 않는다.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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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과 홍수에 무기력하고 매년 큰 피해가 되풀이되는 것은 하드웨어 중심의 대책만 고집하는 1970년대식 토건 사고방식 때문이다. 정부가 내놓는 대책은 예나 지금이나 댐을 만들고 제방을 높이거나 강바닥을 긁어내는 것이 전부다.

하지만 선진국들은 이미 하드웨어의 한계를 절감한 지 오래다. 이들은 재해 빈발 지역의 경우 개발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가능한 한 주민들을 안전한 지대로 이주시키는 소프트웨어 방식을 택하고 있다. 제방을 후퇴시키고 홍수 터 복원을 서두르거나, 도심과 농촌 곳곳에 소규모 저류지를 조성하는 것도 선진국 홍수 방어의 특징이다. 물이 강으로 빠져나가기 전에 육상에 붙잡아두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정책이라는 것이다. 가뭄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무작정 물을 가두려 하기보다 물을 절약해서 쓸 수 있는 대책을 가장 먼저 고려한다. 선진국 재해 정책의 또 하나 큰 특징은 성급하게 대책을 추진하기보다는 정확한 평가를 우선해야 한다는 원칙을 지킨다는 점이다. 재해 취약 지역 평가와 선별에만 보통 4, 5년 이상 걸린다.

대운하 논란을 떠나 4대강 사업이 비판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4대강 사업은 22조원이 넘는 국가 예산을 쓰는 사업이지만, 태풍·홍수·가뭄에 대한 지역별 취약성평가를 생략했으며, 사전 환경성 검토와 환경영향평가 협의도 각각 2~3개월에 마무리했다. 핵심은 홍수의 주 피해 지역이 중소 하천, 산간 계곡지대, 농경지 배수지 불량 지역, 도시 저지대임에도 4대강 사업이 기상재해에 대처하는 수단으로 타당한가 하는 문제이다. 최근 경상남도의 분석 결과를 보면, 침수 피해는 낙동강 지천에서 200회 이상 발생한 반면, 본류에서는 단 6차례에 불과했다.

그 때문에 다음과 같은 의문이 생긴다. 정부는 4대강 사업이 끝나면 홍수 피해가 사라질 것이라 장담하지만 과연 그럴까? 올해 태풍 뎬무나 곤파스의 피해는 우려했던 것보다 크지 않았지만, 많은 비가 주로 4대강 본류와 동떨어진 경기·충남·호남 등 남북 방향으로 쏟아진 것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4대강 사업을 위해 복지 예산을 삭감한 것도 문제지만, 기상재해 피해를 줄이기 위한 예산까지 엉뚱한 곳에 써서 막을 수 있는 피해를 키우고 있는 건 아닐까?

기상재해로부터 인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우리나라 지역별 기후 시나리오를 만들고, 재해에 취약한 지역을 가려내 맞춤형 대책을 세워야 한다. 그러자면 예측 및 예보 능력을 키우는 일이 필수이다. 어디에서 어떤 종류의 피해가 발생할지 오리무중인 상태를 벗어나야 제대로 된 대책이 선다.


(2010.09.13, 시사인 156호 기고글) 원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