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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눈에 비친 연구소

쪽방촌의 '잔인한 8월'

방 온도 바깥보다 5도 높고 한낮 습도는 72%까지
노인 대부분 어지럼증 호소… "생수·영양공급 절실"

3일 오전 8시께 서울 종로구 돈의동의 한 쪽방촌. 한여름이지만 아침이라 비교적 선선할 법한 시간인데도 홍모(75)씨의 한 칸 보금자리는 열기로 후덥지근했다. 낡은 선풍기는 털털거리며 돌지만 슬레이트 지붕이 밤새 받아 놓은 복사열을 내쫓진 못했다. 숨이 거칠고 눈은 충혈된 홍씨가 아침 같은 아침을 맞아 본 적이 언제인지 모른다. 성인 남자가 누우면 제대로 운신하기 어려울 정도의 쪽방 온도는 이미 한낮 기온에 육박하는 30도. 바깥 온도보다도 오히려 5도나 높다.

22일 성균관대 사회의학교실 기후변화행동연구소 하자작업장학교가 7월 27일부터 이달 6일까지 돈의동 쪽방촌의 65세 이상(평균 연령 73세) 고령 가구 20곳의 실내기온을 조사한 결과, 여름철 실내 권고 기준치인 26~28도보다 4~5도 높은 31~32도로 조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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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가구 내 오전 평균기온은 31.1도, 오후 평균기온은 31.9도로 오전과 오후 기온이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다. 실외기온이 오전(26.6도)과 오후(29.9도)에 3도 이상 차이가 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 같은 차이는 단열 시설이 전무한 노후 건물에 미로처럼 작은 방들(평균 면적 2.2㎡)이 붙어 있어, 마치 집열판 같은 슬레이트 지붕으로 모아진 열기가 밤새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구조 자체가 환기와 통풍이 잘되지 않는 데다 치안마저 좋지 않아 밤에도 창문을 열어 놓고 지낼 수 없다. 실제로 홍씨의 경우도 좀도둑과 취객 난동이 두려워 창문을 열지 못한다. 전기료가 무서워 선풍기도 잘 틀지 못한다.

높은 습도는 더 큰 골칫거리. 볕이 잘 들지 않는 위치에 있어 퀴퀴한 방안은 불쾌지수를 높일 수밖에 없다. 이들 가구 내 습도는 오전에는 실외와 차이가 없지만 오후에는 평균 72%로 실외보다 12% 가량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건강을 위해 권고되는 여름철 습도(60%)보다 매우 높은 수치다.

때문에 노인들의 체온도 그만큼 빨리 올라가고, 이는 수면 부족과 스트레스로 이어진다. 실제 조사 결과, 조사 대상 노인들의 평균 수면시간은 2시간30분에 불과했고, 절반 이상의 노인이 어지러움 증세를 호소하고 있다. 고령인 이들은 대부분 고혈압 당뇨병 심장질환 관절염 호흡기질환 등의 지병을 앓고 있어 폭염에 그대로 방치할 경우 병세가 악화될 수밖에 없다.

김영민 성균관대 사회의학교실 연구원은 "쪽방촌 노인들은 열악한 주거 환경 때문에 고혈압 뇌졸중 등의 지병 악화와 일사병마저 우려된다"며 "당장 주거 환경을 개선하긴 어렵더라도 생수와 영양 공급, 간병인 등 최소한의 구호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2010.8.22, 한국일보, 김청환 기자) 원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