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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나눔

수돗물 페트병에 감춰진 진실

                                                                       안병옥 (기후변화행동연구소장)

대동강 물을 팔아먹었다는 봉이 김선달도 울고 갈 시대다. 국내 생수 시장 규모가 작년에 4000억 원에 육박했다고 한다. 워낙 성장세가 가파르다 보니 내후년에는 국내 생수 판매액이 2조 원에 이를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반면 한때 가난 탈출의 상징이다시피 했던 수돗물은 천대받고 있다. 수돗물을 끓이지 않고 직접 마시는 국민이 1%대에 불과할 정도로 수돗물 불신의 벽은 높기만 하다. 경제가 어렵다지만 가격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10ℓ기준으로 6원 정도 하는 수돗물이 최저 6000원에서 최고 10만 원까지 하는 생수에 밀리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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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발유보다 비싼 생수

많게는 수돗물보다 1만 배 이상, 휘발유보다 3배 이상 비싼 생수가 과연 그만한 가치가 있을까? 모든 조사 결과는 수돗물이 생수보다 안전하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국내 수돗물 기준은 생수보다 더 엄격하다. 생수는 47가지 기준만 통과하면 되지만 수돗물은 염소 기준치 등이 추가돼 55개 항목을 합격해야 한다. 물론 수돗물의 안전성은 정수장에서 갓 생산한 시점까지다. 아파트 단지의 낡은 옥상 수조나 옥내 배관을 거치면 장담할 수 없다. 오래된 아파트에서는 드물긴 하지만 녹물이 쏟아지거나 세균이 기준치를 초과하기도 한다.

2007년 6월 미국에서는 1100명가량의 시장이 모인 초대형 회의가 열렸다. 자신들이 생산하는 멀쩡한 수돗물을 제쳐두고 생수병을 앞에 놓고 앉은 시장들이 다룬 토론 주제는 바로 포장 생수 거부 운동. 생수는 오래전부터 미국인들이 우유,주스, 맥주, 커피보다 많은 돈을 지불하는 품목이다. 전 세계의 연간 포장 생수 소비량은 1억6000만톤, 그 중 약 17%를 미국인이 마신다.

회의에서는 시판되는 생수병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과 관련한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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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가 시판하는 아리수 ⓒ www.scienceall.com

언들이 쏟아졌다고 한다. 우선 290만 개의 페트병을 만들기 위해 해마다 1700만 배럴의 석유를 소비하고 있다는 사실이 지적됐다. 이 정도 양이면 미국 내에서 100만 대의 자동차가 한 해 소비하는 연료량과 맞먹는다. 석유가 페트병 생산에만 낭비되는 건 아니다. 수송 과정에서도 엄청난 양의 화석연료를 태워야 한다. 전 세계적으로 포장 생수의 25%가량이 국경을 넘어 수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핀란드 헬싱키에서 생산된 생수는 4300㎞의 긴 여정을 거친 후에야 사우디아라비아 왕족의 목을 적실 수 있다.


생수병 처리도 문제다. 미국에서 사용되는 생수병 중 86%는 재활용되지 못하고 쓰레기 신세가 되고 있다. 소각해도 다이옥신과 중금속 재와 같은 부산물이 남는다. 생수 산업은 지하수를 고갈시켜 농민과 어민 들의 삶을 곤경에 빠지게 한다. 미국만 해도 생수 생산시설이 밀집된 텍사스와 오대호 일대에서는 주민들과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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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ww.dailymail.co.uk

깨끗하고 안전한 물을 먹을 수 있는 권리는 누구에게나 보장해야 하지만 생수는 답이 아니다. 생수의 천국이었던 유럽에서도 수돗물 마시기가 대세가 되어 가고 있다. 심지어 대표적인 생수 수출국인 프랑스에서조차 생수 거부 운동이 확산되고 있을 정도. 파리에서는 시장이 나서서 공식 행사에서는 수돗물만 제공하고 있다고 한다. 뉴욕 시도 마찬가지다. 수돗물이 캣스킬 숲에서 자연 정화 과정을 거쳤다며 시민들에게 수돗물 마시기를 독려하고 있다.


수도꼭지로 돌아가자

우리나라에서도 지자체가 수돗물을 병에 담아 판매할 수 있도록 수도법과 먹는 물 관리법이 개정된 상태다. 서울시의 ‘아리수’를 필두로 광역시들은 저마다 수돗물 판매를 겨냥해 생산시설 확대에 나서고 있다. 수돗물을 페트병에 넣어 판매하면 부당하게 천대받아온 수돗물의 복권은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반기후적인 페트병 문제는 그대로 남는다. 페트병을 거부하고 수도꼭지로 돌아가는 일은 정녕 불가능한 것일까?(
2008년 위클리경향 790호 기고문을 약간 손질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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