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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나눔

기후변화 심리학

안병옥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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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난히 폭탄이라는 말을 좋아하는 듯하다. 마시는 술에는 폭탄주, 종합부동산세에는 세금폭탄이라는 이름까지 붙였으니 말이다. 올해에는 급기야 물폭탄이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부산 주민들 물폭탄 세례.” 지난여름 시간당 90㎜ 넘게 쏟아진 폭우로 주택가 차량들이 급류에 떠내려가다 서로 뒤엉킨 사진과 함께 실렸던 기사 제목이다.

과격한 언사라면 외국인들도 뒤지지 않는다. “날씨가 미쳤다”라거나 “우리는 안전장치를 제거한 시한폭탄 위에 앉아있다”라는 발언은 오히려 진부하게 들릴 정도다. 문제는 이런 극단적인 표현들이 모두 기후변화와 관련이 있다는 데에 있다. 기후변화에 대한 우려는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이자 미국 오바마 정부의 에너지부 장관인 스티븐 추 박사의 발언에서도 묻어난다. 추 장관은 지난 5월 말 영국 런던 제임스 궁 회의에 참석해 기후변화가 “핵전쟁 보다 더 위협적”이라고 단언했다.

기후변화과학의 역사는 인류가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최근까지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심지어 2007년 발간된 IPCC 4차보고서조차 대기 중 온실가스 증가속도와 그것이 가져올 파국을 과소평가했다는 것이 과학자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실제로 최근에는 2000년부터 2007년까지 이산화탄소 농도 증가속도가 1990년대에 비해 33%나 빨라졌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최근 관측된 자료까지 기후변화 예측모델에 포함시킨다면 21세기말 지구 온도는 5.2°C 증가하게 된다. 이는 과거 모델이 예측했던 2.4°C의 두 배가 넘는 수준이다. 과거에는 예상치 못했던 사실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온실가스 배출량이 지금 당장 증가세를 멈춘다 해도 앞으로 최소 1,000년간은 지구기온이 계속 높은 수준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온난화 속도를 누그러뜨리는 완충장치가 사라지고 있는 것도 최근에야 확인된 사실이다. 태양에너지를 흡수해 기온상승을 억제해왔던 바다는 점차 탄소흡수원 기능을 잃어가고 있다. 바다는 이제 축적했던 열을 방출함으로써 지구를 더 따뜻하게 하는 구실을 한다.

기후변화가 몰고 올 파국에 대한 경고는 과학자들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유엔의 반기문 사무총장이나 미국 오바마 대통령과 같은 세계 정상급 지도자들도 인류가 풀어야할 최우선의 과제로 기후변화를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이들이 느끼는 위기감은 “경제위기는 기후변화가 초래할 생태계 파국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발언에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하지만 세상은 과학자들과 정치지도자들이 견해가 과장과 거짓으로 느껴질 정도로 평온하기만 하다. 많은 사람들에게 기후변화는 여전히 우리와는 무관한 외계의 먼 미래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2015년을 정점으로 온실가스 배출량이 줄어들어야 파국을 피할 수 있다”는 과학자들의 경고조차 그다지 심각하게 받아들여지는 것 같지 않다. 도로는 나홀로 차량으로 넘쳐나고 조명이나 건물에서 낭비되는 에너지양도 줄지 않는다. 대다수 기업들은 경쟁력을 약화시킨다는 이유로 온실가스 감축에 미온적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파국에 대한 경고와 평온한 일상 사이에 놓인 거대한 간극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에너지효율을 높이는 기술개발이나 재생가능에너지 확대 못지않게 의사소통과 같은 사회심리학적인 접근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하드웨어도 훌륭해야 하지만 그것을 채울 수 있는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을 간과해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정책도 국민들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소비자들의 심리에 둔감한 기업은 아무리 좋은 물건을 만들더라도 시장에서 성공하기 어렵다. 두려움은 사람들의 행동을 변화시키기 보다는 의식적인 망각과 회피심리를 유발시킨다. 사람들에게 변화의 동기를 부여하고 희망을 불러일으키는 새로운 기후변화 심리학이 절실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