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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나눔

코펜하겐으로 쏠리는 눈

안병옥(기후변화행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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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 인구 51만 명의 작은 도시다. 하지만 북유럽에서는 교역의 중심지이자 방문객이 가장 많은 도시에 속한다. 중세 덴마크어로 ‘상인들의 항구’를 뜻하는 이 도시에 최근 세계인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오는 12월 7일부터 18일까지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15)가 열리기 때문이다. 이 회의에는 190여개 국가에서 정치인, 관료, 환경운동가, 언론인 등 수 만 명이 몰려들 것으로 예상된다.

COP15에서는 2012년 효력이 만료되는 교토의정서 체제 이후 온실가스 감축목표와 시기, 책임분담 등에 관한 협정문에 참가국들의 서명이 이루어지게 된다. 물론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입장 차이가 좁혀질 경우에 한해서다. 하지만 대부분의 나라들은 “당신들은 많이, 우리는 적게”라는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오죽했으면 반기문 유엔까지 나서서 코펜하겐에서 인류의 희망을 만들자며 ‘코펜하겐(Copenhagen)을 호펜하겐(Hopenhagen)으로’ 라는 캠페인을 시작했겠는가.

현재 진행되고 있는 기후변화협상의 쟁점은 한마디로 말해 온실가스를 “누가, 얼마나, 언제까지 감축할 것인가?“이다. 선진국들은 지난 7월 초순 이탈리아 아킬라에서 열린 G8 정상회의에서 2050년까지 1990년 대비 50% 감축한다는 데는 합의했지만, 2020년까지의 감축목표 제시에는 실패했다. 이들이 제시한 감축목표는 전체적으로 1990년 대비 10~14% 감축에 그친다. IPCC의 가이드라인인 25~40% 감축목표에는 크게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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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들은 중국과 인도 등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은 개발도상국이 구속력 있는 감축체계에 편입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국 산업의 경쟁력 약화를 우려해서다. 반면 중국과 인도를 비롯한 개발도상국들의 태도는 단호하다. 지구온난화의 역사적 책임으로 볼 때 선진국들이 자신들에게 감축의무를 씌우려는 것은 언어도단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1850년부터 2005년까지 선진국들의 온실가스 누적배출량은 총량의 80%에 근접한다.

그렇다면 인류에게 정녕 희망은 없는 것일까? 온실가스 농도를 450ppm 수준으로 묶어야 파국을 면할 수 있다는 과학자들과 국가 이기주의에서 자유롭지 못한 정치지도자들 사이의 전쟁에서 과연 누가 승리를 거둘 것인가? 이에 대한 답은 적어도 지금까지는 비관적인 쪽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각국의 협상단 대표들로부터 협상이 2010년 멕시코 회의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조심스런 전망이 나오고 있다. 탄소시장 관계자들도 마찬가지다. 몇몇 설문조사에 따르면, 대부분의 탄소거래자들은 올해 말까지 기후변화협약 타결은 어려울 것이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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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희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하토야마 유키오 차기 일본 총리는 지난 9월 7일 온실가스를 2020년까지 1990년 대비 25%까지 감축하겠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지난 6월 자민당의 아소 다로 총리가 2020년까지 1990년 대비 8% 감축안을 내놓았던 것과는 천양지차다. 하토야마는 몇 일 후 미국에서 열리는 유엔총회에서“세계의 주요 국가들에게도 대담한 감축목표 제시를 강력하게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태도변화에 따라 협상에는 좀 더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의무감축 국가로 편입될 가능성이 더 커졌다. 일본은 우리나라도 경제 위상에 걸맞게 어떤 식으로든 의무감축을 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해왔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는 세 개의 감축안(2020년 BAU 대비 21%, 27%, 30% 감축)을 내놓고 각계의 의견을 수렴하는 중이다. 국제사회의 반응은 그다지 나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선진국과 개도국의 중간쯤에 서있는 나라의 감축목표 발표가 협상 타결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해서 감축목표까지 그대로 수용할 것으로 본다면 그건 오산이다. 협상이 타결될 전망이 어두워질수록, ‘과감한 감축’의 대열에 동참하라는 압력은 더욱 거세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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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바깥 반응을 두고 일희일비할 때가 아니다. 정부 발표안의 가장 큰 문제는 지난 7월 정부가 스스로 선언했던 ‘세계 7대 녹색강국 진입’ 목표가 무색해졌다는 사실에 있다. 제시된 세 가지 감축 시나리오로는 2020년쯤 녹색강국 진입은 고사하고 영원한 ‘녹색후진국’으로 밀려날 가능성마저 있기 때문이다. 국민들과 기업에게만 고통을 강요해서 될 일이 아니다. 정부도 논란이 되고 있는 4대강 사업을 대폭 축소하고 온실가스 감축 예산을 늘리는 등 성의를 보여주어야 한다. 그럴 경우 보다 과감한 온실가스 감축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